일하기 싫어 자아는 나의 인스타에만 남겨두려고 했는데, 일이 싫다는 이야기를 또 입버릇처럼 하게 된다. 일과 약간 거리 두기를 하면 일을 해야 재밌게 살지 싶다가도, 일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하기 싫다. 멀리서 보아야 예쁜 것들이 바로 일들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일 덕후일 수도 있겠다
아픈 동안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을 읽었다. 일에 미친 나같은 인간에게 아주 딱 어울리는 소설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 책의 가치를 너무 떨어 뜨리는 것 같은데, 지금 이 시대를 사는 20-30대 직장인이 느끼는 바를 아주 적절하게 언어화했다는 점에서 시대물로서의 가치가 있고(몇백년 후에 2010년대 ~ 2020년대의 삶을 그리는 현실적인 사료로 쓰일 수 있을 것 같은 디테일함이 있다), 크게 대단한 이념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우리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하여 저항해서 피흘리는 투사도 아니오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것도 아니니) 방향성을 잃어 버린 채로 KTX 꼭대기에 탑승한 우리들은 순간순간의 선택들을 자기 자신의 균형감각에만 의존해야 하는 순간에 놓인다. 자본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의 압박 속에서도 인간성을 찾고 싶은 나의 미묘한 균형감각과 비슷한 지점들이 보여서 즐거웠고 고마웠고 재밌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정말 손꼽히게 좋았다.

중학교때 노르웨이의 숲을 여러 번 읽었다. 그때는 그렇게 외설적을 읽는 것이 처음이라(!! 왜 그 책은 고등학생들이 많이 보는 책에서 권장 독후감이 있던가 !!) 그 부분들을 아주 충격적이고 뚫어지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다시 생각나서 봤는데, 하루키 책 중에 그나마 단단하게 현실에 뿌리내린 느낌의 책은 역시 노르웨이의 숲 뿐인 듯하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미도리가 너무 좋다. 최근에 다시 사서 처음부터 읽고 있는데, 내가 노르웨이의 숲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미도리 아버지와 오이에 김을 싸먹는 장면이라 그 페이지만 읽었다. 생명력이 태동하는 느낌이랄까. (오이혐오론자들이 이글을 싫어합니다.) 중학생 때는 매일매일의 삶에 건강하게 뿌리내려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미도리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잘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하쓰미씨가 꽤나 멋있게느껴졌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절대 그 삶은 택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일 자체와 애증관계에 있지만 일에서 오는 관계들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모든 관계들이 그렇듯 내 몫을 다하지 않으면 사랑 받을 수 없는 관계들이다. 선배가 덜 고칠 초안을 줘야지, 후배에게 손 덜 가게 해야지, 싫은 소리를 할 때는 감정을 줄이고 해야지, 칭찬을 할 때에는 후하게 해야지........... 인성 부족 나에게는 쉽지 않은 미션들이다. 최근에 넷플릭스에 <퀴어아이> 시즌 1을 재밌게 봤는데, 거기 나오는 게이 미용사가 칭찬하는 화법을 보고 닮고 싶었다. Blue Eye가 너무 예쁘다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히키코모리로 빠져드는 남자에게 너의 Blue Eye가 돋보일 수 있게 이 수염은 잘라야 한다고 말한다거나, 머리를 다 다듬어주면서도 이전에도 니가 멋있기는 하였지만 잠시만 지금 나 너에게 반할 것 같은데 너무 골져스해라고 한다거나. 내가 따라할 수 없는 부산함이자 매력적인 화법이었다. 자기 일을 잘하면서 약간의 애정과 센스와 적당한 정도의 활기찬 가면을 덧붙이는 것.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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