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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나의 변호사 생활기: jot down

고뇌의 쳇바퀴를 타는 순간,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기가 어렵다.

by 적일행 2023. 3. 10.

예전에 동료들끼리 서로 많이 해주던 말이,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였다. 그때는 너무 심정적으로 (정신의 퓨즈가 나간 것 같아서) 힘들었기 때문에 도망친 곳에 천국이 없는 것도 맞는데 이렇게 괴로우면 튀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다. 굉장히 어려운 판단이다. 남들이 볼 때 아주 잘하고 있다는 말, 잘해보인다는 말은 하나의 판단 지표는 될 수 있지만, 그런 "말"들이 나의 주관적 감정을 덜어주는 것은 아니기에. 몸이 맛이 가면 정신도 맛이 가니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강력한 지표이긴 하다. 

 

마음이 괴로운 그 쳇바퀴를 타는 순간,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기 어렵다. 인생은 고통이라고, 나이를 먹을수록 쉬운 것은 생각보다 없고 뜻대로 되는 것도 줄어든다. 예전엔 혼자만 잘하면 뭐가 나오던 것들이 있었는데 (사람마다 무엇인진 다르겠지만) 나이 먹으면서 여기저기 얽어매이고 섥히면서 혼자만 잘해서 되는 일도 없고 오래 살기 시작해서(?!) 그런지 뜻대로 안되는 것도 끝 간데 없이 많이 생긴다. 혹은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한 끗 더 하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 것일수도. 좀 더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주어질 수 있는데, 이미 가진 것에 안온히 만족하다보니까 좀 더 노력하기가 싫어진다(아주 약간 나은 결과를 위해서 투입해야 하는 노력은 상상불가로 고통스러우니...).

 

강제로(?) 일과 멀어져서 고뇌의 쳇바퀴랑 멀어지고 나니, 내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시니컬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일종의 패배주의가 섞여 있음을 깨닫는다. 뭐가 다르냐고 하면 글쎄 마음가짐의 차이 뿐이기도 해서 아쉬움도 있다. 지금 여기에서 놀면서 빈둥대며 지내며 빨간 약을 먹어버린 기분도 들고 파란약을 먹은 기분도 든다. 빨간약은 - 아 인생에 다른 즐거움도 많고 나 잘 놀줄(?) 아는 사람이구나, 파란약은 - 아 이러나저러나 다 똑같은데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이 안정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분.

 

 

패배주의로 가지 않는 그 작고 얇은 종잇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아직 말로 구체화하기엔 덜 익은(?), 덜 삭은(?) 생각이기는 한데 여기 와서 빨간약/파란약 동시에 먹은 기분이 드는 것은 다른 나라 문화를 배우는 데서 오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미국 학교에선 왜 맨날 잘했다고 우쭈쭈(?)해주는 걸까 참 이해가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피곤하고 힘들고 삶의 방식이 다 다른데 서로라도 격려하고 사랑해줘야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부작용도 만만치 않으나...ㅎㅎ 남미 출신 친구들은 스킨십이 남다른데, 아니 이렇게 과하게 스킨십을 해야 하는가 싶다가도 (물론 성적인 그런 제스처인 것은 아니고 이 친구들이 워낙 스킨십하는 문화인 것 같음), 친구들에게 좋은 껴안기(그래서 사람들이 프리 허그를 하나 싶기도 함)를 받을 때 오는 따스함이 있기도 하다. 한국 가면 덜 시니컬해져야지, 사람들에게 더 칭찬해주고 더 아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