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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나의 변호사 생활기: jot down

출근 1개월 전으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까?

by 적일행 2023. 3. 4.

과거를 돌아보고 "다른 선택을 했어야지"라는 생각을 안하는 (혹은 안하려고 하는) 편이다. 실제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 내지 망상을 아주 간혹, 정말 아주 간혹 해보는데 그래도 예상되는 결과가 늘 같아서 좀 웃프다. 재능이 없는 자의 슬픔이여....

 

 

A. 평행우주의 내가 경찰대를 갔다 > 경찰대를 졸업하고 로스쿨을 갔을 것이다.

B. 평행우주의 내가 집에서 대학을 갔다 > 서울에 오고 싶어서 서울에 있는 로스쿨을 갔을 것이다.

C. 평행우주의 내가 공무원이 되었다 > 전문성이 걱정된다고 난리 피며 또 로스쿨을 갔을 것이다.

D. 평행우주의 내가 유학을 갔다 > 해외 생활에 지쳐서 또 로스쿨을 갔을 것이다.

E. 평행우주의 내가 대기업에 취직했다 > 전문성이 걱정된다고 난리피며 또 로스쿨을 갔을 것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로스쿨이 엄청난 문돌이들 흡수기인 것 같기도 하구!! 애초에 학문이나 수험 공부에 큰 재능이 없고 교양 교육을 좋아하는 애매모호한 나같은 사람에게 로스쿨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같기도 하고, 진로를 "소거법"(싫어하는 것을 먼저 지우고 남는 것들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정하는 기본 negative 사람인 탓에 다른 진로가 나에게 주는 피로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꽤 직업도 잘 골랐고 행복한 것 같기도? (아니야 정신차려!!)

 

 

그래서 출근 1개월 전으로 돌아가도 여전히 이 회사 M&A팀에 왔을까? 스스로 질문을 몇 번 해본적이 있는데 현재까지 답은 계속해서 "YES"인 것을 보니 꽤나 회사에 만족하고 있나보다. 

  • 그래도 적정한 종류의 일을 할 수 있음. 아주 좋은 일(좋은 일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겠지만), 아주 멋진 일은 못해보겟지만 그래도 자문 변호사 한다고 어디서 말할 법한 일들은 경험할 수 있음.
  • 사람들이 별로 드세지 않음. 이건 단점이기도 한데 (대외적으로도 무르기 때문에), 어쨌든 가혹한 사람이 별로 없음.
  • 업무의 성격이 나랑 맞음. 옅고 넓게 파는 지점이 나랑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음.
  • 나쁘지 않은 급여, 그래도 아주 미세하게 살짝 나은 업무 강도 

 

앞으로도 계속 다닐것인가? 에 대한 답은 사실은 확실한 YES는 아니다. 내 일을 좋아하는 것이랑은 별개로 변호사업 자체에서 오는 피로감도 너무 크고, 얼마나 이렇게 살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게 있냐 하면 딱히 하고 싶은 것은 없는데....방바닥에 누워서 그냥 누운채로 지내고 싶다. 누워서 흐물흐물 녹아버리고 싶다. 

 

희대의 명곡 - Don't be a lawyer

https://www.youtube.com/watch?v=Xs-UEqJ85KE 

 

그래도 맨날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나로서는(!!!) 저 노래 듣고도 웃으면서 변호사 되었을 것 같다. 돌이켜서 예전에 담아 두었던 생각들을 보다보니까 얼마나 내 안에서 좁은 시야와 부정적인 감정들이 엉겨붙었는지도 알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 너무 힘들면 그 순간이 영원히 계속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로펌 다닐 때는 누구 하나 힘들어보이지 않는 인간이 없어서, 더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럴 때도 돌아가서 다른 선택할래라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하던 나였던 것이 참으로 책임감 있구나 껄껄) 몇년 참으면 뭐해 저 사람 저기 계속 있으면서 나만 부려먹을 텐데? 나한테 일 안 줄텐데? 나이 먹어도 이렇게 살아야 할텐데 사람이 이러고 살 수가 있나? 개인 삶이 없나? 등등. 원래는 굉장히 창조적으로 뭘 더 해보려고 하는 의욕적인 인간이었는데, 몸이 힘들고 (그래서) 마음이 힘들었음) 그러니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먼 미래에 뭐가 올지 모르니까 계속 부정적이게 되는 것도 있었던 것 같고. 오히려 아무런 생각 없이 빈둥대고 있는 지금 내 업무에는 대단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소규모 단위 지각 변동이 쾅쾅거리고 있는데 (!!) 곁에 없으니 아무 생각을 안하게 되고 느긋하게 바라보게 된다. 동료의 이직도, 그로 인해서 업무기회가 생기는 것도 늘 생각해보면 예상치 못하게 덜컥 찾아오는구나 라면서 거의 남일 바라보듯이 대하고 있다. 

 

점점 쓰다보니까 주제의식을 잃고 의식의 흐름으로 가는데, 뭐 그럼 어때. 그럴 때도 있는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