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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제가 감히 Harvard라니

오늘의 일기: 의식의 흐름

by 적일행 2023. 5. 3.

아직 시험기간 중이기는 하지만 어제를 끝으로 모든 수업과 시험과 페이퍼가 끝이 났다. 은근히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동아리 업무가 하나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끝난 셈이다. 어제 친한 친구들에게 인생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고 했는데 애들이 벌써 바 쳤냐고...내 마음속에 바는 시험이 아니었던 것인가!! 무의식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네.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LLM 과정이 1년으로 너무 짧다 보니까 아쉬움도 있다. 

 

2년을 했으면 더 많은 친구와 친해졌을까? 수업도 좀 더 여유롭게 듣고 여러 가지 수업을 들었을 것 같기도 하고, 동아리를 했을까 싶기도 하고, 여행을 좀 더 분산해서 다녔을까 싶기도 하면서, 나처럼 놀러 왔으면 그냥 1년이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마음도 교환학생처럼 와서 잘 놀다 가고 있다. 정작 예전에 교환학생을 할 때 6개월이 아니라 1년을 했으면 미국에 남고 싶어졌을까 싶기도 하고.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Career Pivoting을 하기에는 영어도 부족하고 패기도 부족해서 그런지 미국에 남고 싶어 이런 생각은 크게 들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놀고 먹고 있으니까 과정이 2년이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은 종종다리로 계속 하고 있다.

 

그래도 와야 알 수 있는 것들을 꽤 많이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노력하긴 했는데, 역시 누가 시키는게 아니면 기록이 많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검찰/법원/다른 로펌에서는 갔다온 사람들이 유학 후기를 써주기도 해서 그게 공유된다는데, 그런 관점을 보면 기록의 부실함을 덜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회사에서도 동아리에서도 매번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라 심지어 llm 지원도 여기 이 티스토리에 매뉴얼화해부렀지 암암 매뉴얼이 없는 상황이 어색할 뿐.

 


 

LLM 페이퍼를 쓰기 싫어 미루고 미루다가 3일만에 휘리릭 써냈는데 마치 로펌 다닐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물론 3일 중 하루는 밤을 새는 고통이 있었지만 영어 쓰는 나라에서 온 다른 LLM들조차 나의 패기에 놀라버림. 나도 놀랐다!!

 

이 짤이 들어갈 자리는 아닌데 왠지 표정이 이걸 써야 할 것 같아...

마지막 기말 고사를 볼 때는 나사가 풀렸는지 시험 날짜를 착각해서 2번째 시험을 하루만에 공부해야 했는데, 너무 안보고 마냥 시험보기는 좀 그래서 한번 훑다가 또 이틀 가까이 밤을 새니 또 마치 로펌 다닐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잠을 적게 자면 바로 뭔가 몸에서 열나고 심장 뛰는 기분이 심하게 드는데, 간만에 그런 기분을 느꼈다.

 

로펌 다니면서 수면 사이클이 망가진 건지, 아니면 사실 내가 원래 수면 사이클이 안좋았던 사람인 건지 (하긴 이미 한 6년 넘게 그렇게 살았으니 어느 정도 맞는 거겠지 망가진 수면사이클...) 오래 자지를 못한다. 6시간 이상 자는 경우도 있는데, 별일이 없어도 6시간을 못자는 경우도 있다. 내 목표시간은 사실 8시간인데.... 운동을 아침에 해도 밤에 잠이 안오고, 반신욕도 해보고 별 쇼를 다했는데.. 메구리즘을 하면 그나마 밤에 잠이 잘 오긴 하는데 그마저도 잘 따져보면 아침에 쓸데없이 일찍 일어나고 있다. 

 

돌아가서 또 어떻게 이렇게 일하나 싶기도 하고, 이제는 밤 못샐 줄 알았는데 정작 급하니 밤을 새는 나를 보니까 참 마음이 갑갑하네. 나이를 먹으면서 계속 새로운 무기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이미 20대 중반에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가지고 어떻게 잘 대충 때려만 막아보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반성하고 또 반성. 미리미리 하면 될 것을 닥쳐서 하게 되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예전엔 어떻게 그렇게 미리미리 했나 모르겠네. 

 


 

케임브리지에 올 때 가장 걱정한 것은 그 무엇보다 친구 없음. 회사를 고를 때도 친구따라 갔고, 거주지 근처에 친구가 살아야 하고, 꾸준히 연락해야 하고 봐야 하는 그룹이 있는 나에게 갑자기 미국에 1년만 똑 떨어지는 상황은 굉장히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런 면에서 비지팅보다 LLM이 나았던 것은 같은게 어쨌든 LLM은 소속감도 있고 학교 행사도 많으니까...다른 한국인들은 LLM 하면서 어찌 지내나 모르겠지만 개강 광기로 1달 내내 LLM들과 하는 소셜에 나가서 얼굴을 익히는 피곤한 시기를 지나 1년이 지나니 그래도 익숙한 얼굴들도 생기고, 내 평생에 다른 나라사람과 이렇게 따뜻한 우정이 생길 수 있을까 싶은 귀여운 우정들도 생긴다.

 

 

뉴욕바를 치기로 일단 마음은 먹었기 때문에 8월까지 일단 미국에 있을 생각이기는 한데, 이상하게 LLM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들도 국적 불문 바 시험을 안 쳐서 6월이면 많이들 귀국을 하고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장학금 받아 그런지 또 막상 친해진 친구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많네) 여름에는 진짜 공부라는 것을 해보아야 할 것 같기도 해서 크게 기대는 안된다. 이러면서 가장 잘 놀것을 누구보다 잘안다

 

케임브리지가 안전한 줄은 알고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하버드 + MIT + 보스턴 수많은 대학들 + 병원 엄청 많아서 바이오 폭발 콤보로 이루어진 동네라서 그런지 한국인과 한국인 포닥이 엄청 많은 것도 장점이었다. 싱글로 오면 한국인 모임에 끼기는 나쁘지 않은듯. 물론 학생 모임에 나가면 여자 중에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상황은 감수해야 하고, 정작 또 포닥 중 결혼한 분 많은 모임에 가면 막내가 되기도. 

 

1년 동안 한국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주변 친구들/지인들 갑자기 다 결혼하고, 아기 낳고, 직장 바꾸고... 이런 식이라면 나에게 한국은 엄청 많이 바뀐 거지...

 

유학 오래 한 친구들 보면서 유학 생활의 핵심은 외로움과 심심함을 얼마나 잘 이겨내는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절친들 집 근처에 살면서 절친들의 생활을 보니 나에 비하면 이런 수도승이 없다. 나도 돌아가면 좀 단순하고 미니멀하게 살아야겠다라는 하잘 것 없는 결심을 해보았다.

 


 

Graduation checklist를 한 개씩 깨부수고 있다. 빠뜨린 거 없겠지...! 미국학교 학비는 정말 비싼 것 같기는 하다. 내 돈으로 안오니 마음이 편했지, JD들은 어떻게 이 돈을 3배 내고 다니나 몰라. 

 

졸업 전에 학생 계좌에 청구된 돈을 모두 내라고 해서 갑자기 8월 월세까지 내게 되었다. 중간에 계약해지하면 돈 돌려주는 시스템으로 알고 있는데 미리 내는 거 너무 복잡해지는 거 아니냐고...

 

매일 서울 부동산 리스트만 조회해보고 있다. 아파트, 오피스텔 등등. 돌아가면 살 집이 없는 상황이 웃프다. 

 


 

다른 친구가 처음에 왔을 때 보다 영어를 잘하게 된 것 같다고 해주었다. 나도 그런 것 같다..... 처음에 왔을 때는 영어를 너무 안말하다가 와서 매일 버벅거렸거든... 지금도 버벅거렸지만 그때는 아예 단어가 생각 안나는 수준. 그렇다고 영어가 드라마틱하게 는 것은 아니다. 여기 친구들이 너무 이해를 잘 해주다 보니까 그냥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어서 점점 문장이 아니라 단어를 내뱉고 있다. 세상에.  한국말도 잘 들리는 말을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는데 영어도 똑같은 것 같다. 나 말고 학생의 99%가 영미권 사람(터키 사람 한 명이 있었지만 이 친구도 영국에서 계속 유학한 친구였음)인 수업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 수업에서 막 자발적으로 손들고 의견도 내고 그랬는데 다들 얼마나 갑갑했을까. 

 

한국 가서 영어로 일할 수 있냐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오히려 LLM 하고 나니까 내가 영어가 얼마나 부족한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낀달까? 내 영어가 부끄럽기도 하고. 챗지피티와 딥플로 해결할 수 없는 말하는 영어, 쓰는 영어의 세계. 

 


미국 와서 뭘 하나를 산다면 아이폰. 사람들이 사진을 다 에어 드랍한다. 나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