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정신 없던 졸업식이 끝났다. 미친듯이 몰아서 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할일도 없고 해서 졸업식을 이틀 다 갔는데, 졸업식 이틀을 다 갈 것이 아니었나봄.. 골병이 나서 며칠 째 골골 거리다가 겨우 살아났다. 졸업식은 "주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의 1주일 동안 진행되는데, 메인 이벤트는 이틀에 걸쳐서 진행된다. LLM 들 대부분 미국 졸업식은 처음인지라(그리고 뭔 학교에서 새벽 6시부터 불러 모아서 사람들 줄서게 만드는지라) 이게 뭐냐고 서로 많이 물어봤는데, 클래스 마샬이 동영상을 보내줬지만 보지 않았고 그냥 무지성으로 참석.
난 가족이나 친구가 한국에서 오지 않았고(이 날은 한국인들도 부모님들이 꽤 해외여행할 겸 오시며, 외국인들은 98% 이상 친구&가족 조합이 기다리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가족을 만나기도 함) 나를 케어해줄 미국 현지 착한 친구가 있어서 꽤 편하게 보냈다. 졸업식에 혼자 참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데, 2명정도 나를 위해서 와줘서 나를 케어해주면 좋은 것 같기는 하다. 은근히 짐맡기고 할 일이 있어서...
1. Regalia
일단 졸업식에 참석하려면 Regalia가 필수. 렌탈에만 95불이 드는 극악의 가격을 가지고 있으며, 사전에 Harvard coop을 통해 받는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우 연약하여 비를 맞으면 안되고 (그래서 비 맞을 때의 second plan이 학교마다 있다) 스팀 다리미질도 하지 말라고 경고를 받았다. 그리고 Regalia에 딸린 모자가 매우 불편하므로 머리핀이 필수. Regalia에는 게다가 주머니가 없다. 주머니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뇌물을 받지 않도록 하는 판사복의 전통이 낳은 것이라는 썰이 있었으나 검증 불가. 아무튼 이것도 불편. 남성용으로 만들어져서 단추에 걸게 끔 후드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역시 옷핀이 필요했다.
하버드 레갈리아 자체는 기본적으로 검은색이고, 졸업식 날 주변을 살펴보니 학부생은 후드가 없고, 석사부터는 빨간 후드, 가슴팍에 버드 나무 같이 생긴 (뭔지 모름) 식물은 각 소속 학교를 표현해서 dual degree 인 사람들은 색깔이 2개가 나란히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ph.d는 홀로 독자적인 빨간색 레갈리아를 입는다.
2. Affinity graduation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인종 집단 혹은 first generation student를 위한 별도의 행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lgbtq+를 위한 lavendar 졸업식도 있었다.
3. 5/23 Dinner
졸업한다고 사진이랑 선물들을 나누어주었다. 친구들 부모님도 만나고 친구들의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4. 5/24 class day
이날 뭘하는지 모르고 무지성으로 갔는데, 약간의 연설, 올해의 교수님 시상, 올해의 직원 분 시상, 올해의 community leader (로스쿨 학생들) 시상이 있었다. 본인이 상을 안받는다면 굳이 안가도 되는 행사였는데, 그래도 이날은 사람도 적고 여유도 있어서 가능하면 이날 사진을 많이 찍어두면 정취도 있고 좋은 것 같다.
로스쿨에서 불러준 연사가 와서 강연을 했는데, 2023년의 연사는 미셀 여(양자경)였다. 아시안 그룹 학생들과 사진도 찍어주고 여러 사람들과 셀카도 찍어주고 가심. 강렬한 노란색 옷을 입고 와서 다시 한번 원색 정장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이날 미리 스냅사진 작가님을 고용해서 오전에 사진을 찍었는데, 졸업식의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좀 있을 때 찍은 것은 장점, 약간 복잡할 때 찍은 점은 단점인 것 같다.
5. 5/25 commencement
<오전> 전체 졸업식 - 꼭 갈 필요는 없음. Ticket 필요한데 1인당 본인 제외 2매씩 줌. 모든 사람들이 가장 많이 ticket을 구하러 다니는 행사.
하버드에서 나눠준 책자를 대충 살펴본 바에 의하면 졸업식이 commencement(시작)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최초의 하버드 졸업생들은 입학할 때 모두 아카데미아에서 누군가를 가르칠 직업을 가질 것이라는 것이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에 졸업식 대신에 입학할 때 commencement 세러모니를 했다고 한다 (앞으로 교육자가 될 거라는 의미에서). 학교가 발전하면서 모두가 교육자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졸업으로 시기를 옮기고 등등해서, 현재의 졸업식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일에는 학위를 받는 행사가 있어서 다들 몰려 다니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를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알아서 생존할 것을 잘 당부하도록 하자.
일단 아침에 로스쿨에 새벽같이 모여서 빵과 커피들을 주워먹다보면, 로스쿨의 class march가 시작된다. 사실 이 행사를 꼭 갈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상당히 졸렸고 피곤했다. 그래도 좋아하는 친구들은 매우 좋아했고 귀여운 사진도 여러개 찍었다. class march는 별게 있는건 아니고 백파이프 부는 아저씨랑 로스쿨 깃발이랑 로스쿨 표식 들고 걸어서 와이드너 도서관 앞까지 가는 행사이다. 와이드너 도서관 앞에 가면 각 학교별로 자리가 다 마련되어 있다(각 대학원별, 그리고 학부생은 기숙사별). 놀랍게도 하버드 졸업생이 그 앞에 다 들어간다 (신기방기). 그래서 매우 박터지고 빡빡하기 때문에 미리 각오를 하고 가야한다. 가방 검사하고 큰 가방은 반입 안된다고 해서 가방 두고 갔더니 막상 졸업하는 사람은 가방 검사를 안하더라. 그냥 입장하는 사람은 다 가방 검사를 했다고 하니까 유의.
이 행사는 매우 전통넘치는 행사인데, 372번째 와이드너 도서관 앞에서 했다고 대충 들은 것 같다. 매우 오랜 기다림 끝에 행사가 시작되었는데 의외로 전통 넘치는 행사라서 즐겁고 귀여웠다. 일단 오래된 전통에 따라 meeting이 시작된다고 어떤 할아버지가 나와서 선포한다. (영국전통인것 같다..미들섹스 카운티 세리프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나와서 미팅이 시작되었다고 알린다.) 중간에 라틴어 축사도 있어서 이 학교가 대단하구만 했는데, 축사가 너무 웃긴 내용이라서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영어 번역본을 함께 주었는데, 라틴어랑 영어랑 1:1 대응이어서 그런지 팔로업이 어렵진 않았다.) 그리고 여러 축사를 한 후 단대별로 단대 학장이 하버드 총장에게 이번에 졸업색 몇명에게 학위를 달라고 승인을 구한 뒤 명예 학위를 주고 (거의 마지막 쯤에 백신을 연구한 하버드 박사 출신 헝가리 학자가 명예 박사를 다시 한번 더 받았는데, 이 연구 덕분에 새로운 코비드 백신 개발이 빨랐다고 한다. 사람들이 다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경의를 표하였다.) 다시 한 번 축사를 듣고(2023년은 톰 행크스), 마지막에 미들섹스 카운티 세리프가 미팅이 종료되었다고 알리면서 졸업식이 끝난다.
<오후> 단대별 학위수여식
이러한 본 졸업식이 끝나면 각자 정해진 단대로 이동해서 학위수여를 한다. 학위 수여는 엄청나게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생각해보면 로스쿨은 1년 졸업생이 700명 가까이 되니 (500명의 JD와 200명의 LLM) 굉장히 기계적으로 빨리 이루어진다. 학위를 주는데 어떻게 순서를 이렇게 안맞추고 막 받지 했는데, 학위 주는 란에 학위 껍질만 있다 ㅋㅋㅋ진짜 학위는 단상에서 내려가서 봉투를 따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봉투를 여는 순간 라틴어....해석이 안되는데 학생들만 확인할 수 있는 페이지에 그게 무슨 말인지 해석을 올리는 판이니 아이고 두야. 몇천만원 내고 못읽는 학위를 받은 기분이 어떠신지요.
한 가지 감동 포인트는 이름을 읽는 분이 정말 연습을 열심히 했는지 굉장히 정확하게 이름을 읽는다는 것. 이름 발음법에 맞춰서 영어로 이름을 다시 적어서 내라고는 하면서 발음까지 녹음해서 올리는 것이 강제로 의무화되어 있는데, 그걸 듣고 연습을 하신 것인지 이름을 안틀리고 정말 정확하게 읽어주신 점은 감동이었다.
당일에 writing prize 사람도 함께 알게 되는데, 받은 사람에게 개별 통지를 안했는지 친구는 자신이 받은지도 모르고 있었다. 이 친구야 정신 차려...내가 이름을 발견해서 알려줬다.
LLM들은 500명의 JD의 종료를 기다리지 못하고 본인들 학위 수여가 끝나자 뿔뿔이 흩어져 도저히 이 졸업식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전용사진사가 졸업 전후로 내 사진 찍어주는데, 몇 장 안되는 것의 원본을 100불 받으므로 대체로 안사는 분위기지만 미리 스냅 안찍었으면 샀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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