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M 올때 과분하게도 회사 선후배 동료들로부터 선물을 많이 받았는데, 그냥 당장 생각나는 것 중 가장 유용한 아이템 두가지.
1. 1년만에 모두 잃어버려...사진이 없는 2개의 열쇠고리
2. 우리 비서팀에서 선물해준 연필깎이랑 내 이름 새겨주신 연필. 한국어는 (회사이름)의 하버드라서 창피하지만(...으악 으악 또 퇴사 마렵다...!!!) 미국서는 누가 알쏘냐 배째라. 연필 잃어버릴까 걱정하셨는지 이거 내 연필이라고도 써주심. 올때 캐리어에 자리도 얼마 없는데, 이걸 어쩌겠누 도리가 없네 하며 쑤셔 넣고 왔는데 웬걸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정말 많이 섭섭할뻔 했다.
로펌에 있을 때는 비서님들이 늘 연필도 새로 깎아줘서 연필깎이를 쓸 일이라고는 밤새다가 집중이 안될 때 뿐이었는데, 이젠 내가 깎아야한다. 그랬더니 연필이 너무 빨리 줄어든다. 조금만 공부가 안되어도 깎기 시작했거든. 그런 것 치곤 아직 연필 개수가 많은 것이 얼마나 공부를 안한 것인지 보여준다. 내가 얼마나 까다로운 담당 프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담당 비서팀에서 기막히게(과연!) 내 취향을 알아채고 b - 2b 정도의 무르기를 가진 연필과 간편한 자동 연필깎이를 선물해주셨다. 원래는 연필깎이에 본인들 사진도 스티커 만들어서 붙여주셨는데 몇번 청소하며 씻었더니 좀 그래서 뜯었다.
다른 로펌에서는 담당 비서에게 명절 선물도 한다던데, 나는 딱히 그래본적도 없고. 비서님께 내가 해드린 것도 없는데 과분하게 세심한 챙김을 받은 느낌.
그냥 내일 모의시험 신청해놓고 나서 오늘 보니 공부가 하나도 안되어 있어 벼락치기를 하려니, 또 벼락치기는 잘 안되네. 초벌읽기라 연필로 슥슥 그으며 읽다보니.. 밤새고 집 가서 잠깐 눈붙이고 씻고 아침에 출근하면 다시 연필이 아주 뾰족하게 깎여있던 그 순간이 생각나서.
그런데 이런 게 가장 무서운 생각이다. 힘든 시절에는 힘든 게 별로 생각이 안나고 자꾸 미화되거든. 고통의 흔적은 분명 남지만, 어떤 임계점 밑의 고통은 자꾸 그 생생한 자극이 잊혀지고 그랬던 거 같은 몽롱한 기분만 남는다 말이지. 그날 모르긴 몰라도 연필 말고는 다 기분 나빴을것이고 내 튼튼한 위와 장조차 아이스아메리카노에 놀라서 낑낑 대고 있었을테니까. 잊지 말자 사무실에서 1시간만 자고 하려다가 그냥 뻗어서 아침에나 일어나던 시절들. 잠은 집에가서 좀 자지....월세 아깝던 시절.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좀 못해도 나만 망하는 공부는 오늘은 그냥 텄고 잠이나 자서 상쾌하게 가야지. 덜 힘들고 가볍게 가자. 혹시 아나, 이러다가 제3국 가서 살고 있을지. 중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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