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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나의 변호사 생활기: jot down

돌아가는 길에 (3) - 나만의 잭팟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by 적일행 2023. 8. 21.

 

1.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직업인으로서 “인정”은 받고 싶다.

 

복직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요즘, 어쩌다 보니 서울 4대문 안에 볼 일이 있어서 서울 마실 온 김에 동료들 몇몇을 만났다. 1년이 빠른 세월은 아니라서 그대로이기도 하면서, 또 나름 치열한 세월인지라 변한 면도 있었다. 만난 이들 모두가 비교적 건강함에 감사했고, 1년이 지나서 나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없다는 점에도 묘하게 괜찮으면서 안 괜찮은 그런 시간이었다. 

 

로펌에 다니는 수많은 주니어 어쏘들이 겪는 문제인데, 일이 가장 힘들 때는 오히려 뛰쳐 나가는 데(혹은 자신의 진로를 제대로 정립하는 데)에 필요한 건설적인 생각 따위는 들지 않는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task를 쳐내는데 급급하다. 불규칙하게 자느라 수면이 부족해져버린 머리는 자는 법을 잊어버려서, 새벽까지 일하고서는 또 그 새벽에 웹툰 보거나 영상 조금만 보고, 억지로 잠을 재우고 그러고도 급한 일이 있어서 늦잠은 못 자고, 다시 또 커피를 뇌에 수혈하여 몽롱한 상태로 출근하기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보니 오타가 나고, 쭈그린 자세로 일을 하니 어깨가 아프고, 어깨가 아프니 다시 머리가 아프고, 몽롱하니 대충 보고, 앞뒤가 안 맞고, 맞는듯 묘하다가 업무 퀄리티 때문에 클레임을 받고… 신체 건강도 잃고 정신적 건강과 인성도 소진하는 나날이었다.

 

사실 건설적으로 뛰쳐 나가려면, 갈 곳이 정해져 있다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어야 할텐데, 가장 힘들 때는 건설적으로 갈 곳에 지원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며 그냥 그만 두면 바로 이 꼴(!)을 다 안 볼 것이라고 생각하니 머리속에 사표를 던지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분명 내 어려움을 완화시키려면 (그 어려움의 종류에 따라서) 차근히 단계적으로 취할 단계가 있다. 나이만 먹었고 정신은 어린 애인 나는 바로 사표를 그냥 던지는 상상망상도 엄청나게 많이 했고 실제로 실행 비스무리하게 해보겠다고 근접한 적도 있다. 일단 던지면 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리라…라는 생각 때문에. 그러다가 막상 일이 여유로울 때는 생각이 없었다. 간만에 놀기 때문에 잠깐 주어진 자유를 아무렇게나 허비하거나, 어찌할 바를 몰라서 드러누워서 잠만 잔 적도 많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오락가락 영원히 끝없는 루프

 

많이 힘들 때는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 가는지라는 고민 혹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수년간 고민하고 치이면서 내린 다소 허무한 결론은 “그냥 이렇게 태어난 인간인가 보다”.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스스로 많이 고민해보았는데, 그 “무엇”이라는 것은 수년간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전혀 구체화되지도 않았고 여전히 막연하다. 적절히 밥벌이를 하면서 일정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는 싶은데, 또 일에서 그 막연한 그 무엇인가의 전문성을 확보하여 “자아실현”도 하고 싶은 애매한 욕망과 욕구… 스스로 정의내릴 수 있는 생각하는 커리어의 방향성이나 종착지라는 것이 없다. 딱히 큰 이유도 없는데 맹목적으로 무엇이든 꽉꽉 채워 넣고 뭐든지 열심히 해보고 싶어하는 경향성(그리고 숨길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인정 욕구)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인정 욕구를 위하여) 무조건 갈아 넣고 달려가려는 성향이 많이 줄어들기는 하였는데, 기본적으로 무엇인가 더 해보겠다고 마음 먹으면 모든 걸 다 갈아 넣을 기세로 하거나 모든 장작을 다 태워버리는 데 익숙한 것 같다. 차라리 맹목적으로 갈아 넣어버리는 단순한 성격이면 참 좋을텐데,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 갈아 넣는다. 기본적으로 에너지 폭이 크기도 하고, 불안함과 초조함이 크기 때문에 나를 소진 시키는 것으로 그 불안함을 대신하려는 것이다. 쓰다보니 ESTJ의 전형적인 불도저적 특징 같기도 하다. 

 

 

불도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LLM 기간을 거치면서도 내가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스스로 정의내릴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냥 스스로 달려가는 인간임을 받아들이고 좀 더 지속 가능하게(모두가 좋아하는 sustainability)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생각. 지금 처한 조직/장소를 나를 위한 플랫폼/도구로 사용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어디서나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 욕구를 부인할 수 없으니 지금 속한 장소에서 인정받고 내가 하고 싶은 일(무엇을 하고 싶은지 궁극적인 목표가 불명확할 뿐, 나는 사소하게 하고 싶은 것이 많은 편이다)을 조직에 align시켜서 해봐야겠다. 이제까지 조직을 위해 기여하려고 했다면(물론 상호적인 관계이고 나도 조직의 덕을 본 것이 많지만), 이번엔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태도를 좀 반전하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조직을 통해 최대한 얻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야지. 조직/장소를 활용해서 나만의 성공/행복 스토리를 써내야지. 

 

두번째 생각. “이제는 맹목적으로 그만 갈고, 쉬엄쉬엄 갈 줄 알아야겠다.” 목표만 주어지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성향을 억누르자. 스트레스 받지 말자. 이제는 나를 “더” 갈아 넣고 싶은 순간에 퀄리티 하락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걸 멈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를 갈아 넣으면 퀄리티가 올라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처럼,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갈아 넣은 것과 더 갈아 넣은 것 사이에 차이는 미묘한데 비하여, 내 신체와 정신이 깎이는 부분은 너무 커지는 듯. 

 

한편으로는 남들에게 나처럼 갈아 넣어 결과물을 주기를 바라지 않아야겠다는 (정확히는 그러기 위한 노력을 하고, 마음을 좀 더 관대히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로펌의 환경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내가 입사했을 때 이미 선배들이 예전보다 의견서를 안 써서 글쓰기 지도를 못 한다는 말을 했었다(그러니까 내가 못쓰는데 글쓰기 연습도 못 시키겠다는 말이었겠지…?). 그래도 여러 의견서를 1주일에 1개 정도는 꾸준히 썼던 것 같고 특히 공공기관에서는 의견서를 많이 요청받아서 이런 저런 주제로 7-8장에 달하는 글을 썼던 것 같다. 7년여가 지난 지금, 길이가 긴 의견서를 요청하는 고객은 매우 드물다. 고객들이 간명한 논리, 간명한 결론, 짧은 글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긴 글의 완결성을 중요시하는 도제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들(특히 후배들)에게 같은 요구를 하게 된다. 그런데 변화하는 환경에 이런 부분들(중 특히 내가 집착하는 요소들이 있음)을 후배들에게 제시하면서 더 갈아 넣어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변호사는 글로 설득하는 직업이니 글쓰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후배들 중에 그렇게 완결성 있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후배들은 스스로 뭔가 해보려는 태도를 고려했을 때 (하여튼 뭘하더라도) 성공하겠다는 막연한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복잡하고 긴 글이 가지는 중요성은 적어도 자문 영역에서는 점차로 감소하고 있고, 긴 호흡의 글에서 보여지는 완결성을 후배에게 요구해도 될까? 그런 요구는 더 ‘갈아 넣어’ 달라는 것은 아닐지… 그런 요구가 같이 일하는 동료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많이 갉아먹는 것이라면 요구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실제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실천이 정말 잘 될지는 모르겠다). 저년차 때에는 긴 호흡의 글로 수련한 선배들이 보기에 성이 차지 않는 글을 써낸 적이 많았다. 그런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서 (잘 안 써지니까) 그냥 시간을 많이 투입하는 것으로 해결한 적이 많다. 사안을 위한 글쓰기나 리서치를 바로 시작하지 못하고 이상한 류의 딴짓을 많이 하면서 사건과 친해지기를 한참 시도한 후 비로소 글쓰기를 하느라 남들보다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타임 못 쓰면서 밤 샌 적도 많다. 나 자신은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생각했으나, 성장통이 너무 컸다. 

 

어떤 영역이든 내가 겪은 고통을 잊어서는 안되고, 남들은 비슷하거나 더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것, 사소한 배려와 약간의 내려놓음이 큰 고통을 상당 부분 완화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남에게 너무 쉽게 고통을 요구할 수도 없고, 고통을 요구하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바와 상황에 맞춘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2. 언젠가 나만의 잭팟을 만날 날을 차분히 기다리는 수밖에.

 

서른 줄에 접어든 이후로 친구들하고 만날 때마다 내 마음대로/내 뜻대로 되는 것은 그나마 학창 시절이 마지막이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학창시절에도 모든 것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에 비하면 그래도 꽤 계획대로 되었던 듯 싶다.  특히 주변 친구들이 공부 좀 한다하는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그래도 학창시절이비교적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던 시절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직업 생활에서도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개입한다. 내가 평생 주도적으로 업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일이 누군가의 퇴사로 인해서 주요 업무가 되기도 한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귀인이 커리어 점프를 할 수 있는 사람과 연결해주기도 한다. 가장 슬픈 시나리오지만, 갑자기 아프기도 한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그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차근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고 간혹 앞과 뒤를 돌아보며 약간의 방향 조정을 하는 것 뿐이고, 삶의 풍파에서 운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니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은, 사실은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저 하루 하루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나의 영글지 못한 생각을 인상깊게 읽었던 오정세 배우의 수상소감으로 대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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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부문 조연상 수상자에는 오정세가 호명됐다.

 

오정세는 "드라마, 연극, 영화 매 작품마다 배움의 성장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작품은 반성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작은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 것 같다"라며 "지금까지 100편 넘게 작품을 해왔다. 작품마다 똑같은 마음으로 임했는데 결과가 다른 것이 신기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세상에는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다.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지 않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자책하지 말고 본인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여러분도 자신만의 '동백이'를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출처: https://www.etoday.co.kr/news/view/190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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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가 아이돌들에게 진실, 성실, 겸손을 강조하는 교육을 하는 영상이 있다. 결국 하루하루 진실하고, 성실하고, 겸손하게 지내면서 어느날 유전 터지듯이 잭팟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운좋게 잭팟이 터지면 감사한 것이고, 그게 아니라도 진실, 성실, 겸손하게 정말 살았다면 과정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이고… 운이 계속 나를 배반할 수 있기에 과정을 즐기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냥 주어지는대로, 닥치는대로 그때 그때 임기응변하다보면 길이 열리고, 열린 길을 부여잡고 가고 또 가고… 어떤 안정기(그런 것이 정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끊임없이 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대안은 없는 듯하다. 

 

생각만으로 될 일도 아니고, 생각해서 될 일도 아니며, 그냥 내가 직접 부딪히면서 그때그때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선택들을 해나가는 수밖에. 그 길에 끝에 무엇이 있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