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계획은 6개의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엉켜 있는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쓰다 보니 초반에 쓴 글의 내용이 처음 계획한 것과 조금씩 바뀌면서 뒤쪽 글들의 주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게 되었다 (중복되는 내용도 많고, 나도 고민을 다하지 못했고). 게다가 미국에서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한국 들어오니 생각보다 여유 있고 진득하게 글을 쓸 시간이 나지 않아서 (역시 마라맛 한국 – 자극도 재미도 스트레스도 전부 다 많다) 더 이상 글을 쓸 주제를 생각하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남아 있던 주제들은 그냥 하나로 뭉뚱그려서 남아 있는 고민들로 던져두고 (아마 앞으로 차근히 생각할 기회는 적을 것 같으니) 그냥 맞닥뜨려보자는 (…) 소박하고 용두사미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이제까지 이 시리즈가 두서가 없기는 하였으나, 이 글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정말로 두서가 없을 예정.
1. 어떤 사람의 커리어 발전에는 마을이 필요하다.
“team”이 유기적으로 일할수록 효율성이 올라가는 transaction 업무를 많이 했기 때문에 동료들 간에 서로 신뢰도가 높을수록, 나와 같은 직업의식을 공유할수록 바보들 같이 서로 얽어매고 있구나ㅠㅠ 일할 때 효율적이면서 그나마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 동료가 받쳐주어야 내 커리어 발전이 될 때도 있고, 동료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나의 역할과 목표를 좀 더 세부적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한다. Corporate 변호사로서의 역할에 꽤나 만족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corporate 변호사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은 나로서는 한동안 그 커리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하나의 팀이 필요하다. 나 혼자서 잘해서 corporate 업무를 전부 잘해낼 수도 있겠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챙기고 할 수 없으니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결국 내가 신뢰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도 꽤나 비슷비슷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귀여운 마을이 필요하다.
어떤 내용의 강연이 계기가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LLM 중 어떤 특강(정확히 어떤 특강이었는지 기억이 안남)을 듣다가 강사로 온 분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귀국하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팀원들과 커리어에 대해 서로 느끼는 불안감을 공유하고 길을 모색하면 좋지 않을까(물론 지쳐서 서로 푸념하고 노답으로 끝나지 않게, 미리 섬세하게 주제 셋팅이 필요하겠으나)라는 생각을 해보았다(푸념과 한탄도 전염되지만 동시에 긍정의 기운과 함께 해보자는 마음은 서로 전염되니까…). 그래서 혼자 끄적끄적 친한 동료들에게 쓰는 편지(겸 제안서) 초안을 잡다가 결국엔 노느라 완성과 섬세한 접근에 실패했다. 앞으로 정리해나가야 할 생각의 시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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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커리어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나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커리어의 방향성이나 종착지가 있나요? 대이직의 시대, 사내변호사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로펌에 입사했나요? 혹시 그 어렵다는 지분 파트너를 꿈꾸나요? 아니면 더 나아가서 대표 변호사까지? 사람들이 다 취업을 향해 달려가니 취업했고 와보니 크게 모자란 점은 없으니 그냥 현상유지를 하며 일단 다녀보자는 생각인가요? 그래도 이 정도 직장이면 안정되었는데, 이걸 걷어차고 다른 길로 가려니 두려운가요?
연수 떠날 때는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네트워킹해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법조인인 나”라는 존재는 어느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확 바뀌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친 로펌 생활이 집적된 결과물이더라고요.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마음으로는 몰랐나봅니다. 회사와 멀어지고 나니 절실히 느꼈습니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다른 변호사들 앞에서 내 강점은 무엇인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반문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강점이 없는 것은 아닌데, 회사 내에서는 하루하루 사건을 쳐내면서 “생존”에 매몰하다보니 자기 자신의 강점을 생각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연수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쉼표를 찍고 내 장점이 무엇인가 제대로 다 돌아보고, 우리 “내부”의 시각이 아니라 “외부”의 시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수 중에는 (스스로에게 괴로운 방식이 아니라 좀 더 겸허한 마음으로)객관적인 시선과 잣대로 저의 부족함과 한계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왜 우리는 커리어에 대해 불안해하면서도 솔직히 말하지 못하거나 서로 이해하지 못할까요? 커리어 전환이 로펌 밖으로 나가는 길뿐일까요?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로펌 안에서 안정적인 커리어 전환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걸까요? 나의 체력과 젊음을 회사에 내어주고 돈을 받는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플랫폼 삼아서 내가 다른 걸 해볼 수는 없을까요? 나 스스로 나의 강점과 차별화 전략을 발굴하지 않으면 누가 내 멱살을 잡고 끌고 가 주기는 할까요?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이런 질문이 불안함과 답 없는 우울증의 트리거로 가는 지름길이었다면, 회사와 다소 거리두기가 되던 연수 시기에는 좀 더 느긋하고 여유롭게 이 질문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답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같은 사람 안에서도 나이를 먹고 연차를 먹으며 달라질 것입니다. 아직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해외 연수를 다녀오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은, 눈을 “안”으로만 돌리지 않고 “밖”으로 돌리기 위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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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공부는, 흥미를 잃고 나니 고통이 되었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하고 있는 업무 중 일부와 관련은 있으나 전체적인 업무와 크게 관련은 없다. 애초에 전공을 고를 때 “재미” 위주로 골랐기 때문에 수업을 듣는 동안 괴롭기는 하였으나 개별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에 후회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대학원을 다 다니고 나서야 다시 한 번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 – 나는 질문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예전에 연구자로서 내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가 어떤 사실이 주어지면 학문적 호기심이 생기거나 궁금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현상을 받아들이는 속성이 강해서였다. 이걸 잊고 있었는데, 대학원을 다시 다녀보니 사람들이 문제의식이 있는 많은 부분에 나는 대체로 문제의식이 없다. 사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지식을 “배우기만” 하는 코스웍 정도였고, 정작 연구자로서 필요한 학위를 받기에 적절치 않은 것 같기도 … 그런 의미에서는 사실 LLM 코스가 정말 나에게 맞는 코스였던 것 같다.
원래 항상 뭘 시작하면 무라도 썰고 싶어한다. 미국 가면 대략적으로 주제의식이 생길 줄 알았는데, 뭔가 비교법적인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 외에 주제의식은 생기지 못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갈고 닦아야 한다고 생각을 해보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네. 가방끈 힘들다.
3. 서비스직 업무를 잘 할 수 있을지, 걸맞는 태도가 필요하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그냥 자기 좋은 맛에 사는 나는 서비스 마인드를 장착하기가 쉽지 않다. 원스톱 서비스여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스톱” 상태 비스무리한 듯하기도… 내가 서비스를 받았을 때 좋은 점을 끊임없이 생각해보려고 하고 있다. 꼭 법률 서비스만이 아니라 다른 서비스직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워야지라고 생각 중. 벤치마킹에는 한계가 없다. 일례로 최근에 공인중개사 분들 여러 분을 경험해보았는데, 예전에 나에게 임차 물건을 주선해주셨던 공인중개사 분이 너무 깔끔하게 일을 잘하셨던 분이라 (다르게 말하면 나랑 맞는 분이기도 함) 자꾸 비교가 된다. 사실 똑부러지고 다소 먼저 묻지 않아도 해주는 것(선제적인 태도)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부분이 컸던 것인데, routine한 업무는 고객이 묻지 않아도 먼저 물어봐주고, 업무를 조정하는 태도가 돌이켜 보았을 때 고객에게 잘한다는 인상을 남기기 좋은 듯하다.
나의 한계를 잘 알고 이걸 솔직하게 잘 알리는 것도 본받을 태도인 것 같은데 잘 안된다. 아직 나의 한계를 정확하게 가늠하지 못하는 것 같고, 그러면서 동시에 자존심 때문인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한계를 솔직하게 잘 알리지도 못하는 듯하다. 나의 한계를 명확하게 (너무 좁지도 너무 넓지도 않게) 잘 인지해보자…
4. 인생의 다른 부분과 직업 생활 간의 조화가 필요하다.
나는 나에게만 No Man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브런치 글을 읽고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도 나에게만 No라고 많이 했던 것 같아서…
https://brunch.co.kr/@5412960b84604b8/2
어떻게 인생과 효과적으로 조화하고 내 균형점을 찾을지. 이건 영원한 숙제다. 그래도 하나씩 연습해보자. 나에게도 Yes라고 해주기, 남에게만 Yes라고 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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