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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제가 감히 Harvard라니

[Orientation] 미국 로스쿨과 social event

by 적일행 2023. 8. 26.

LLM과 관련된 모든 것이 끝이 났고 이제는 베짱이 자아가 개미 자아로 돌아갈 시간. 내가 친한 친구들에게 나임을 밝히고 티스토리를 알려주며 다른 사람에게 이걸 알려 줄 때 나임을 밝히지 말라는 말을 까먹었기 때문에(!!) > 결과적으로 생각보다 많은 후배들이 내 티스토리를 보고 있어서 LLM은 그렇다고 치는데 다른 글들이(...) 정말로 진심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눈물 주룩주룩... 물론 그 분들은 나인지 모르고 봤어도 나인지 알았겠지만) 온라인 중2병 감성 박제는 참을 수 없다고요ㅠㅠ!!

 

남은 지인들과 후배들도 모두 LLM이나 visiting scholar를 갔기 때문에 (사실 제대로 놀려면 visiting scholar가 좋고, 각국 친구 사귀어보고 싶다면 나중에 여행갈 때 득을 보겠다라면 LLM이 더 유리하다. 학위 욕심, 공부 욕심 없고 휴식에 집중하고 싶고 가족들 있는 분들에게는 visiting scholar 강추) SNS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미국에서의 삶을 경험하고 있어서 아련한 마음을 느끼고 있다... 맞다 그때 그렇게 놀았지.

 

개강 초반 시즌은 소위 social event들이 엄청 많을 때이다. 서로 모르는 사이이니 알고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들이다. 술 먹는 프로그램, 같이 뭐 만드는 프로그램, 조별로 나눈 프로그램, 게임하는 프로그램... 프로그램도 다종다양하다. 프로그램하면서 대학교 1학년 때 우루루 몰려가던 신입생 OT(요새는 이런거 있으려나)이 생각나기도 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서서(아오!!! 서지 말자!!! 제발좀 앉아서 해줘ㅠㅠ) 진행을 하고, 음식은 어느 순간 굉장히 지겨워지는 cold food/finger food류가 많고, 한 두시간 이야기하면 바로 기가 다 빨려서 집으로 퇴각하고 싶어진다. 정상이다. 퇴각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다른 일 있다고 말하고 튀어버리자. 

 

초반에는 체력 좋아서 모든 곳에 짤참하고 기억력 좋고  말 잘하고 영어 잘하는 친구들이 압도적으로 치고 나간다. 사람들에 대해서 잘 기억하고 재미있게 노니까.... 반면 기억력 0인 나는 내가 방금 이야기한 친구가 과테말라였는지 멕시코였는지 매번 헷갈리고 사람 이름도 발음하기 어렵고 정말 매번 헷갈렸다. 1년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친구들이 누구 있잖아! 하면 아 걔 누구!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초반에 잘 모르겠어도 그냥 얼굴 들이밀면 그래도 계속 나오는 걔로 인식될 수 있는듯...(+내가 가지고 있는 잡기가 몇가지 있는데, 예를 들어 쩝쩝박사, LLM에 온 다른 친구들이 그걸 잘 알아봐줘서 이미지가 형성 된 것도 있다.)

 

물론 학교를 불문하고 한국에서 오신 LLM 분들 중 많은 수가 가족들을 챙기느라, 로스쿨 친구들 이외의 인간관계를 챙기기도 바빠서, 로스쿨 친구들이 어리다 보니 생활 반경과 습관이 맞지 않아서 등등 여러 이유로 로스쿨에 온 다른 나라 LLM들과 잘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니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방향으로, 가장 스트레스가 없는 방향으로 살면 된다. 

 

social event들의 광풍을 지나면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 프로 짤참러도 있고, 소규모로 식사를 계속 하는 친구도 봤고, 본인 문화를 알리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고, 정말 소수의 친구와 매일 만나서 재밌게 노는 친구들도 있었고... 하기 나름인듯. 내가 하는만큼 친해지더라. 

 

이런 socializing에서 어려운 지점은 (1) 상대방과 "빨리" 말이 통하는 주제를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2) 나의 asian 본능은 중간에 대화를 중단하고 사라지거나 다른 사람과 다시 말 붙이기 어렵다는 것. 1년 살았다고 이 지점들이 나아지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여기저기 구르면서 몇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

 

(1) 말이 통하는 주제 찾기

 

A. 지리학 내지는 지역학 (?!)

 

LLM 친구들 사이에서는 "국적"을 물어보는 것이 맥락상 offensive하지 않기 때문에 그 나라에 대해 자기가 아는 것을 일단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미국서 어디 갔는데 내가 여기 출신이 아니에요, 나는 다른 도시에서 왔어요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어디 출신이냐where are you from를 시전하면 인종 차별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나의 외관으로 judge한 거여서.. 굉장히 subtle한 지점인데, 좀 어렵다.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종종 생긴다.)

 

Korea > Squid game, Love parachute(사랑의 불시착 - 남미에서 미친 떡상한 드라마라서 브라질 애들이 많이 말했음), BTS 이런 식이다. 넷플릭스의 발전으로 내가 안본 한국드라마까지 외국인들이 본 경우가 많았다. 

 

나도 사실 생각해보면 너 어디서 왔니 - 런던? 아 나 거기거기 가봤는데, 이런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각 나라에 대해 다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유리하다. 그리고 각 나라에서 온 엘리트들은 대다수가 자기 나라 자연 경관 칭찬하면 좋아해준다. 자기 나라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각자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날선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자연 경관과 유적, 음식 칭찬하는데 싫어하는 친구는 없었다. 나 이거 먹어 봤는데, 이건 이런 저런 점이 달라서 신기했어. 이 음식은 다른 나라의 무엇과 뭐가 다르니 / 나 그 나라 가고 싶었는데 못 가봤다. A 도시가 꿈이다, B 도시는 어떠냐 이런 류의 질문으로 소소한 대화 참 많이 했다. 

 

B. 학과 공부

 

제일 많이 대화가 되는 주제 중 하나는 무슨 수업 듣니, 우리 이거 겹치네, 이 교수는 어떻대?류의 대화. 우리 그때 보겠다 류의 대화가 별게 아닌데 그래도 공통화제가 되어 준다.

 

정 할 말 없을 때는 각 나라 법학 교육 시스템도 이야기 많이 했다. 나라 마다 굉장히 달라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미국식 로스쿨 시스템인 곳, 6년 동안 LLB를 하는 곳, 박사 까지 대체로 마치는 곳(독일계통 국가들) 등등 굉장히 다종다양한 variation이 있었다. 

 

C. 원래 하던 프랙티스나 공부

 

나는 노동법에 관심이 많은데, 내 동기 중에는 노동법을 하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딱 한 친구가 노동법을 전공해서 하버드 SJD까지 되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 고용 유연화와 기타 등등 노동법의 주제에 대해서 한시간이나 이야기를 했다. 유럽 쪽에서 학사 받은 친구라서 더 재미있게 대화할 수 있었던 듯. 

 

D. 미국 와서 한 일 

 

미국 와서 한 일 중에, 동네에서 한 일 중에 재미 있는 일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러면 금방 취향을 알 수 있다. 왔는데 음악회 주구리장창 다닌 애들도 있고, 여행 홀릭들도 있고, 쇼핑 홀릭 등등도 있다. 겹치는 부분이 있으면 그걸 집중적으로 파고 든다. 이렇게 운좋게 대화 주제를 잘 찾은 친구들은 앞으로도 대화하기가 참 편하다.

 

E. 취미

 

취미생활 강력한 친구들은 취미에 대하여 꼭 묻더라... 제 취미는 음주였는데....  취미가 통하면 확실히 같이 뭐뭐하자는 공수표를 날리기도 좋고, 실제로 뭘 같이 하기도 한다. 

 

(2) 중간에 아름답게 대화 중단하기

 

대화가 다 멈춘 다음 할 말도 없고 침묵의 어색한 순간이 찾아오는데, 이 때 대화 주제를 더 발굴하지 못하면 스무스하게 빠져 나와서 다른 사람과 대화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혹은 아예 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저변을 넓혀보고 싶을 수도 있으니 적당하게 빠져나오는 미덕이 필요하다. 한국에는 테이블 셋팅이 한 번 되고 나면 모두 자리에 앉으니까 그럴 일이 적어서 그런 적당한 미덕(?!)을 연습할 기회가 적었던 것 같다. 회식에서는 팀장님만 움직인다고요.

 

제일 많이 하던 것은 I need more drink/food하고 자리 비우면서 슥 사라지기.

다음으로 좀 뻔뻔해진 다음에 한 것은, okay good luck to you 하면서 나는 다른 애랑 무슨 이야기 해보겠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헤어진 후 다른 대화 상대 찾기. 

 

여전히 하면서도 어렵고 어색하지만, 어느 이벤트를 가도 외국인들은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뻔뻔하고 자연스럽게 대화상대를 적절히 교체하면서 어색하지 않은 척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