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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나의 변호사 생활기: jot down

복귀일기 1탄

by 적일행 2023. 10. 16.

이제 복귀한지 두 달이 지났다. 첫 달에는 어리버리하고 정신을 못 차렸고(회사도 정신이 없었는데 개인적인 여러 문제까지 얽혀서 정신이 혼미했다), 이제 두 번째 달이 되니 그나마 약간 적응한 듯하다. 지난 주에는 약간 무리했는지 일요일에 몸살 기운이 쭉 몰려와서 약먹고 푹 잤더니 오늘은 그나마 낫다. 내일부터는 생산적으로 살기로. 

 

기왕 로펌 다닐 거 "가오가 있지, 좀 멋지게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두 달을 다니고 있는데 처음 돌아왔을 때보다 밝은 기운(?)은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그 마음가짐이 유지되고는 있다. 약간 짜증날 때도 있고 오락가락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유학 가기 전과 비교하였을 때 마인드셋은 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꽤나 주인의식(?)과 애정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주인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역시 진짜 주인이 아니면 주인의식이 그만치 생길 수가 없다. 예전에 선배들이 파트너 연차에 가까워질 때 "아니 어떻게 저렇게 모드가 바뀌지?" 혹은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는 생각들을 했었는데,  그냥 연차를 먹으면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는 나이와 경험의 문제였던 것일 수도 있고. 존경해 마지않는 P선배님께서 때가 되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고 하신 적이 있다. 그때는 선문답같은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더 먹으니 정말 때가 되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나보다라고 하고 있다. 

 

첫달에는 정신이 없어서 사람들하고 약속도 거의 못 잡고 쉽게 피로해졌다. 6년을 넘게 회사 시스템을 쓴 게 분명한데, 갔다오니 사이트 이름이고 뭐고 하나도 기억이 안 나더라. 내가 뭘 두고 가고 뭘 가지고 갔는지 기억이 정확하게 안나서, 짐을 정리하는 것도 한참 걸렸다. 노트북도 새로 지급 받았더니 어색하더라. 공정거래법이 들어가는 의견서를 쓰는데, 공정거래법 내용은 생각이 나지만 정확히 무슨 조문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안나니까(그래도 자주쓰는 조문 번호 정도는 기억했었는데ㅠㅠ) 그걸 찾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고객한테 청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수영하는 법이나 자전거 타는 법을 까먹은 것 같아도 어느 순간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듯,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까 일했던 방식도 기억이 났다. 유학 가기 전에 일을 다 까먹을까봐(?!) 두려운 나머지 내가 한 일들을 Summary해서 5개의 파일로 만들었는데 (참고할 수 있게 엑기스를 뽑는 방식으로) 문제는 그 파일의 존재 자체를 잊어 버린 것(!!).  한참 후에야 파일의 존재가 생각이 나는데, 참 보기도 애매하고 볼 수도 없더라.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았나 봄.

 

요새 최고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나 자신의 브랜드 만들기 / 나 자신을 마케팅하기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아직은 어떻게 브랜드를 만들거나 마케팅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고민도 덜 영글었고 아직은 생각도 부족하다) (i) 관리자 되기 / 브랜드 만들기 류의 책을 읽어보고 있고, (ii) 또 다른 방식으로는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해보고 있다.  (i)의 행동을 하는 이유는 조금 다른 모드로 생각해보기가 필요한 것 같고 이건 경험해보지 않은 영역이니 남의 인사이트를 차용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서.  (ii)를 하는 이유는, 내가 어쏘 다음 단계에서 뭘 할 수 있고 없는지 아직 감이 없기 때문에 그 감을 잡기 위해서.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많이 하고 있고, 다르게 행동을 해보려고 많이 하고 있다. 물론 잘은 안된다.

A.  유학 전에는 고객의 명함을 받으면 그대로 갈무리하고 말았는데 최근에는 조금 가까웠던 분들에게 괜시리 연락도 드려본다. 원래도 종종 연락하던 분들이 있기는 한데, 그걸 넘어서 좀 연락해보려고 한다. 계기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냥 일단 별 거 없더라도 연락을 해본다. 

B. 사건 진행 중인 것들은 (소송 변호사가 아니기도 하니) 메일 보내고 나서 다시 고객이 연락 줄 때까지 솔직히 케어를 안할 때도 많았는데(게다가 파트너 변호사님들을 잘 만나서 파트너 변호사님들이 대체로 고객 컨트롤을 다하셨고 나는 페이퍼 워크만 하면 되었다), 작고 사소한 것도 그냥 문자를 보내 두거나 전화를 한다.

C. 고객이 나에 대하여 가지는 심리적 장벽이나 허들을 낮추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D. 나의 감정적 동요를 타인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서 명상 내지는 자기 암시를 계속 해본다. 내 표정에 타인이 주눅 들지 않게 적절히 표현하는 법을 연습해보고 있는데, 잘 안된다. 이제 짬과 경험이 있으니 감정적 폭발을 맞닥뜨릴 것 같을 때는 그냥 피하는 연습 하고 있다. 이 상황을 피하고, 좀 calm down한 다음 다시 부딪치자...정도로?

E. 후배 변호사에게 지적이나 칭찬을 할 거면, 개개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하자. 개개인의 사생활 말고, 직업인으로서의 목표와 성장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서 대해주자. 

 

기왕하는 거, 떡상해보고 싶은데 뭘 해야 떡상하지? 일을 잘하는 것은 디폴트이니 당연히 시키는 일은 조용하고 열심히 할텐데, 자문 업무라는 것이 사고 안치고 스무스하기 어려울 때도 많아서 걱정이다. 게다가 난 사고를 잘치는 편인거 같기도 함.... 흔적 없이 멋지게 일을 해내는 거에 더해서 뭘 더 할 수 있을지 고민 고민. 결국 이것도 적당한 이미지 메이킹과 홍보가 필요한 일이란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무협지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데 타고난 기재와 운 하나로 떡상하는 주인공처럼, 나도 그러고 싶다.... 물론 그들도 고통의 길을 거닐지만.... 사이다 먹이는 주인공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