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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나의 변호사 생활기: jot down

어쏘라이프 D-23, 방향 잃은 돛단배

by 적일행 2023. 12. 8.

예전에는 주관도 강한 편이고, "하기 싫은 것"이 명백했고, 내가 생각하는 "멋진 변호사"의 모습도 어느 정도 미약하지만 형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뭐가 하고 싶고 하기 싫은지를 잘 모르겠고 뭐가 멋진 직업인인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60살까지 변호사한다고 치면 지금도 인생에서 저년차이지만, 사회 통념의 저년차 어쏘는 벗어난 것 같아서 저년차로 구별해봄.

 

▶ 저년차일 때 하고 싶은 것 = 누구나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일하기. 물론 '누구나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달라서 쉽지 않은데, 일 잘하고, 효율적으로 업무 배분하고, 그리고 똑똑하고 이런 선배들하고 일하고 싶어했고 또 일하기 위해서 막 달렸었다. 업무 태도가 고분고분하고 좋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내가 하는 일의 퀄을 올리기 위해 (보이기에 예쁜 것도 포함) 많이 노력했었다.
 
▶▶ 지금은? 누구나 일하고 싶은 분들은 나에게까지 일을 주기 어렵고, 사실 이런 분들은 로펌에서 교육 역할을 하시는 부분도 커서 내가 언제까지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있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많은 후배들이 혜택(!)을 보아야 하는 부분. 그리고 나도 꼭 이분들하고 일하는게 예전처럼 편하지만도 않은 지점도 있다. 워낙 세밀히 챙기시니까 role이 겹침(물론 심적 든든함은 Max). 
▶ 저년차일 때 하기 싫었던 것 = 나랑 성격이 안맞는 분들과 일하기. 나한테 잔소리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랑 일하기. 자꾸 밀어 넣는 사람이랑 일하기.

▶▶ 지금은? 아주 저년차 때는 저렇게 일하는게 되게 숨막히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내가 어느 정도 머리도 컸고 (짬도 찼고) 쳐내는 방법도 배워서인지 예전만큼 죽을둥 살둥 싫지는 않다. 오히려 약간 고분고분해진 지점이 있음. 

 

늘 분노와 감정으로 모든 것이 (생각 안해도) 클리어하게 하고 싫고/말고가 결정이 되곤 했었는데, 이제 새로운 가치관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감정이 더 이상 기준이 되기 어려워졌고 모든게 blurry 해졌다(너 뭐가 되고 싶은거야 도대체?). 나이를 먹고 약간은 둥굴어진 것 같기도?

 

 

과거에 계획 세우고 그걸 지키면 너무 좋아했던 파워J인간(물론 나는 나에게 관대해서 60%만 지켜도 좋아했음)은 이제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다. 로펌에 있으면서 계획을 세워봤자 잘 되지도 않는 경우가 8할이요, 그렇게 안되면 스트레스를 받고야 만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았기 때문. 그래서 "무계획적" 인간이 되어 버렸고 여기에 젖어들어서 정작 계획을 면밀히 세우고 잘 해내야 하는 일들을 하지 못했다. 

 

승진을 코앞에 두고 있고 그동안 예쁨 받은 보람이 있는 것인지(아니면 그냥 너무 떼를 많이 써서 그런 것인지) 멘토 포함 이런 저런 선배들&사람들이 조언을 참 많이 해준다. 모두 틀린말은 아닌데, 내가 실천 가능한지는 별개의 문제. 각자의 운이 터지는 방법과 비법이 모두 다르고 내가 마냥 따라한다고만 해서 될 것도 아니고. 아이고 어려워라!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운에 맞춰서 차근히 기다리되, 얼마 전에 읽었던 것처럼 시도의 횟수와 모수를 늘려서 확률을 곱했을 때 잭팟 터지게 하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복귀하고 나서 Y변호사님과 밥을 먹을 때 ▶ A를 해보고 싶다, 그런데 A를 누가 아는지 잘 모르겠고 이 분야 글을 읽어봤으나 역시 굉장히 모호하다, ▶ B를 해보고 싶다, 그런데 역량이 될지 모르겠고 감당 가능한지 모르겠다라는 고민을 이야기했었다. Y변호사님이 이런 저런 솔루션을 준 것 외에,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고 전혀 잘 모르겠는 분야는 의식 없이 아무렇게나 다 읽고 소화하지 말고 "이 분야의 책 한권을 쓴다"라는 생각으로 공부를 해보라고 했다. 좋은 방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적당한 지면에 적당히 어렵지 않은 내용을 적당하게 잘 버무려서 재미있게 기고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필력도 부족하고.....! 

 

유학 갔을 때 분명히 복귀하면 매주 요런 저런 공부를 일주일에 1시간씩은 투자해서 해서 박사 논문을 쓰리라!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사와 서울 복귀와 술자리(;;;)의 광풍 및 온갖 병원 신세(보험되는 나라 오자마자 난리법석)를 거치면서 실천을 못했다. 이제 일주일에 1시간은 공부라는 것을 좀 해야지. 조금씩 모여서 티끌모아 태산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