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ORK/나의 변호사 생활기: jot down

파트너 라이프 D+13일차, 주말에 꾸역꾸역 회사에 나와 있다

by 적일행 2024. 1. 13.

부족한 수면 끝 잠과의 싸움을 억지로 이겨내며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조금 수다를 떨다가 꾸역꾸역 회사에 나왔더니 다시 잠이 쏟아졌다. 기어코 회사 소파에서 1시간 잔 후 드디어 좀 보려고 하니까 읽히질 않아서 결국 공부 자리를 바꾸어야겠다며 짐을 주섬주섬 바리바리 싸고 있는 중. 일단 밥을 먹고 와서 생각을 좀 다시 해볼까...

 

한국의 많은 대형로펌들이 소위 WP(working partner)/IP(Income partner) 등의 이름으로 펌마다 다양하게 부르는 일종의 파트너 수련 체제(?)를 갖추고 있다. 명목은 파트너가 처음되면 삽질을 하니 그 기간 동안 일정한 임금 하한은 보장하고 파트너로서 역할은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 실질은 펌마다 다르겠으나, 어쏘와 파트너 사이 애매한 곳에 끼어서 갈 곳 잃은 애매모호하고 힘든 것들을 흡수하는 역할. 파트너처럼 주도적이어야 하고 어쏘처럼 어싸인 된 일을 거절없이 페이퍼 웍도 해야 하고. 더 설명을 잘하고 싶은데 잠에서 깬지 5분 지나서 뇌가 물에 젖은 것처럼 몽롱한지라 생각이 적다. 

 

단계가 바뀌었더니 어쏘 시절의 친절한 가이드가 내려오지 않는다. 또 갑자기 문제의식이 발동. 내부통제 차원에서라도 일정한 초기 가이드는 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 내 얼굴에 침뱉기라 자세히 말은 못하지만 하나하나 차곡차곡 요구할 것 기록 중. 후배들은 내년에 좀 낫기를.

 

파트너가 되니 달라지는게 있나요? 요새 가장 많이 받는 질문.

a. 글쎄, 잘 모르겠고 친한 어쏘들이 놀리는 것만 늘었음. 뭣만 하면 아이고 파트너님 오십니다. 파트너님 가십니다.

b. 일단 퇴직금이 없어짐. 월급이 극명하게 오르는 회사도 있다는데 일단 우리 회사 임금 하한 기준 그렇지는 않은 듯. 비용 쓰는 법이 바뀜.

c. 직함이 사람을 만든다고, 귀가 얇아서 책임감이 1초 간 더 생김. 이번에 하는 일 너무 힘들어서 친한 어쏘들과 모여서 궁시렁궁시렁 대다가, 아 내가 어쏘일 때 어쏘인 친구와 이래도 되겠지만 내년에 들어오는 친구들부터는 나와 20년차 EP가 그냥 다 "파트너"로만 보이겠구나, 이 역학 관계를 못 읽고 내가 파트너 역할을 못한다고 생각하겠구나 생각. 정신 똑바로 차리고 덜 징징대야하는구만. 

d. 이제 내 장사를 외부든 내부든 해야 하는구나 했더니 더 힘듦. 아직 초반이라 그런지 저글링이 잘 안되고 이 업무 저 업무 다 급하다고 난리인데 어쏘 때 나를 막아주던 방어막 선배들이 다 사라지면서 그냥 때려 맞는 중.

e. 그냥 요새 드는 생각인데.... 치사한 사람도 있지만 어쏘 때 마냥 치사해보이던 사람도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기도 하고, 그냥 좀 다 이해가 되고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함. 그저 서로 마냥 다른 사람 착취하는게 아니라 저 사람도 다른 어디 가서 역할을 하는게 있고 고군분투를 하고.... 페이퍼웍만 하던 백면 서생에서 좀 더 날 것의 전장에 선 느낌인데 그냥 이렇게까지 다들 힘내서 살고 있는 건가, 사는 것 참 힘드네 싶음.  

 

아무튼 이번 주말에는 1개의 보고서를 완결 지은 후 그에 대한 Summary를 영문&국문으로(LLM 돈 값하네) 작성하여야 하며, 주간 보고를 해야 하고, 리스크 평가 해야 하는 것도 해야 하고, 확약서를 하나 써야 한다. 그리고 월요일에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하여 푹 자야 한다.

 

가능한 부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