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소식은 둘 중 하나다. 하나, 눈 코 뜰 새 없이 미친 듯 바빠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거나, 하나, 그냥 적당히 살만하고 괜찮고 쾌활해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때. 새해 벽두를 쾌활하게 시작은 못해서 갑갑한 마음에 또 이렇게 아무렇게나 글을 쓴다.
돌아오는 3월 2일은 출근한지 10년차가 되는 날. 9년이나 지났으니(?) 많이 늙었다. 입사할 때는 만 25세였던 것 같은데, 어느 새 곧 만 34세. 빠른 생일이라 윤석열 나이 도입되기 전부터도 늘 나이가 헷갈렸던지라 이 계산이 맞는 것인지는 자신이 없다. 뭐가 되었건 9년의 지지고 볶고 울고 웃고 떠들고 술주정 부리던 날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9년 전의 나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여전히 화를 잘 못 참고, 사근사근하고 착하게 말은 못한다. 늘 삐딱하니 삐딱선을 타고. 얼마 전에 엄마가 전화 와서 춥지 않냐길래 "개춥다!" 했더니, 엄마가 우리 딸이 한동안 개춥다는 말 안쓰더니 오랜만에 듣는다고 한참을 웃으셨다. 34살이나 되었는데 남들이 34살에 기대하는 품격은 없는 셈이다.
30대 중반이 되니 전보다 마음이 약해져서 툭하면 운다. 예전에 동기 언니나 친구가 방에서 울면서 일하는 걸 이해를 못했었는데, 나도 눈물병이 옮았는지 요새는 울면서 일하기도 한다. 동기 하나가 새로운 도전을 하러 떠났다. 다시 안 볼 것도 아닌데, 눈물이 왠지 정말 많이 났다. 그동안 수많은 선 후배를 떠나 보냈고 퇴사도 겪었고 내적 갈등도 많이 겪었다. 그래도 그 모든 사람들이 떠날 때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눈물이 났다. 앞으로의 어려움과 힘듦과 외로움을 알 것 같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남아 있을 나의 외로움이 걱정되어서일까? 수많은 길이 서로 연결되었다가 헤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동안 받아들이지 못할지언정 울지는 않았는데. 이번엔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회사 내 작은 안식처가 사라진 느낌,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는 느낌이 든다. 외로움을 받아들여야겠지, 일은 일로 해야겠지. 그녀가 가는 길은 그녀에게 조금은 평안하기를, 아름답기를, 생각하지 못했던 기회로 이어지기를 작게 응원하고 바라는 수밖에.
몇 년 전보다 패기만만함은 줄어들었고, 이해의 폭은 아주 조금 늘었다. 꼰대 성향은 더욱 강화되었고, 돈이 아주 중한지 모르던 어린애는 이제 돈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돈 이야기만 한다. 좀 더 섬세해진 면도 있고, 좀 더 무심해진 면도 있다. 어느 선배가 그랬다. 아이의 세상을 만들어 주는 첫 창문이 자기라서 자기는 계속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선배, 이미 선배는 차고 넘치게 좋은 사람인걸요. 선배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껴져서 마음이 몽글하면서, 하루하루 나아지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작년 하반기에 처음으로 술을 먹고 덜컥 내려앉는 마음을 느꼈다. 무슨 말이냐면, 술을 먹고 나서 다음 날 깰 때 너무나 우울하단 거다. 그 동안 그렇게까지 우울하다는 걸 잘 못 느꼈거나 둔감했다. 체력이 떨어졌다는 증거겠지? 친구들이 그걸 이제야 느꼈다니 참 대단하다고 했다. 감정의 진폭이 너무 커서 술을 의식적으로 멀리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올해되어서 처음으로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 원래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운동 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가는 과정이 너무 괴롭기도 했다. 최근에 다른 운동을 시작했는데, 운동을 하는 그 순간, 45분 운동을 딱 마치고 케틀벨을 놓는 그 순간에 스트레스가 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왜 많은 친구들이 발레에 미쳤었는지, 왜 헬스장으로 돌진했는지 알겠다. 하나가 가면 다른 하나가 온다.
여전히 어떤 것들은 착수를 못한다. 계속 미루고 꾸물댄다. 괴로워한다. 전보다 나은 점은 의식적으로 주말에는 끊어가려고 한다는 점. 그러나 주말이 아닌 지금도 미루고 꾸물대고 있다. 미루고 꾸물대어야 글이 써지는 느낌. 회피형이다. 답장을 빨리 해야 한다는 강박은 어떤 때는 너무 심하고, 어떤 때는 너무 안한다. 오락가락 그 자체이다.
작년 10월 초 퐁당퐁당 연휴에는 연휴를 별로 못 즐기고 대체로 일을 했다. 쉬는 날도 1분 대기조였다. 퐁당퐁당 연휴 다음에 일을 좀 덜 받고 숨어 있었는데, 11월 중순이 되어 어떤 일들이 시작되고 중되면서 11월 중순부터 12월이 그대로 순삭이었다. 12월이 순삭되면서 체력이 많이 날아간 것 같다. 11월 초에 많이 회복 했었는데, 1월이 되어 다시 좀 루즈해지니까 만사가 더 하기 싫다. 지난 달에는 너무 바빠 정신이 없으니 그냥 이 깨물고 일 생각만 하면 되었는데, 반대로 이번 달에는 루즈해지니까 마음이 산란하다. 무엇보다 10월 초까지 했던 일은 괴로움과 재미가 공존하는 부분이 있는 일들이었는데, 11월 중순부터 시작한 업무는 재미는 거의 없고 고통이 너무 컸다. 그게 다 지나가고 나니, 지금 하는 일도 충분히 재밌을 부분이 있는데 재미가 없다.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 요새는 모든 것에 유리되어 일하는 느낌이 든다.
일을 10년 하고 나면 내가 가는 길에 확신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이 생 마감할 때까지 가는 길에 확신은 없이 가는 것이 내 성격인가 보다.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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