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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Working Smarter: Tips

변호사 일을 시작한 젊은 영혼들에게 - 업무노트/업무일지를 써보자

by 적일행 2020. 2. 16.

저년차 변호사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일, 저년차 변호사가 충분히 시간을 쓸 수 있는 일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로펌에서 트레이닝을 이미 받은 변호사들이 다시 사내로 흘러 들어가고, 사내에 있던 변호사들이 다시 로펌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사내 법무조직 / 변호사들의 실력이 이미 굉장히 상승한 상태여서, 저년차 변호사가 걸러낼 수 있는 쟁점, 저년차 변호사가 할만한 일들은 이미 사내에서 전부 필터링되어서 로펌으로 옵니다. 쉬운 질문은 들어오지 않고, 복잡다단한 질문이나 기한이 촉박한 질문이 늘어납니다. (그러니까 비싼 돈 주고 로펌 쓰겠죠.) 점점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고객은 줄어들고,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고객은 "외부 법률자문"을 받았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한 사안으로서 물어보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저년차 변호사가 할만한 일은 "기한"이 부족해서 저년차 변호사에게 맡기기 부담스러운 경우가 생깁니다. 업무를 총괄하는 인차지 어쏘 / 파트너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다른 일들이 여러 개로 중첩하기 때문에 저년차 변호사에게 맡기기 힘든 경우가 생깁니다. 그 일 자체로는 저년차에게 맡겨도 충분하지만, 자기 일정을 생각하면 조금 더 credibility가 높은 중간연차 변호사에게 시키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내가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아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구멍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함). 저년차 변호사들은 노가다성 업무 중간 중간에 비노가다성 업무를 하면서 실력을 키우는데, 노가다성 업무는 점점 돈이 안되니(대표적인 예가 M&A) 선배가 가르칠 시간도 없이 휘몰아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비노가다성 업무는, 일정 연차 밑으로 잘 안 돌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년차 변호사가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업무의 '복기'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미드를 계속 반복해서 따라 읽으면 영어 말하기가 향상되거나, 바둑 기사들이 대국을 복기해보듯이 자기 업무를 복기해보는 과정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1년차 때 "왜 이렇게 시켜서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시키니까 꾸역꾸역 했던 업무를 2년차에 다시 들춰보면 "아~ 이래서 이렇게 시켰구나"라고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는 그래도 내가 보는 눈이 생겼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업무 복기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저는 정리에 미친 사람이라(핰핰) 거의 무슨 책을 써놓는 수준으로 복기를 해놓았지만, 5년차가 된 지금은 거의 들춰보지 않습니다....(so sad..). 그래도 가끔 들춰 보면 깜짝 깜짝 놀랍니다. 이런거 까먹지 말자고 써놓고 까먹고 있었구나....그런데 까먹었구나.....(한심)

 

제가 생각하는 업무 복기 방법은 이렇습니다.

  • 일기랑 비슷하게 가장 품이 덜 들게 적으면 좋습니다(각자의 정리 습관이라는 것이 있으니). 노트 자체가 새로운 업무가 안되게 해야 합니다. 일지로 쓰더라도 일기처럼 매일 쓸 필요는 없고, 그냥 사안이 발생해야 쓰는 것이지요.  
  • 가급적 digitize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때그때 필요한 내용을 찾을 수 있게요. 손글씨를 좋아하는 분들은 이참에 아이패드를 구매(쿨럭)
  • 선배가 지적한 사항은 반드시 기록합니다. 후배 갈구는 것을 취미이자 업으로 삼고 별로 영양가 없는 지적질만 해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선배가 없다는 전제 하에 선배들은 사실 지적하는 것도 시간이라 귀찮고(그래서 후배가 눈치껏 알아서 했으면 좋겠고) 명시적으로 지적해주는 사람은 참 고마운 사랍입니다. 지적 받은 행위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닝겐을 무시하지마세요 또 저지르니까 사람입니다.
  • 실수한 사항도 기록합니다. 마찬가지로 다시 안 저지르려는 것인데 기록했던 것 또 기록하는 나 자신 발견^^
  • 했던 일 또 하면서 알게된 사항은 기록하거나, 따로 모아 둡니다. 쟁점이 계속해서 중복되는 경우 등. 쓸모없는 것 절반, 쓸모 있는 것 절반 정도 남습니다. 예컨대 맨날 바뀌는 배임 판례라거나, 배임 판례라거나, 배임 판례(과연 쓸모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헷갈린다)
  • 사실 재판 많이 하시는 분들이나 행정 규제 업무를 직접 하시는 분들은 "A법정에서는 이랬다", "A기관에서는 이랬다"를 써놓는 것도 나중에 모아놓고 보면 꽤 큰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기억력이 좋다면 역시 논외

 

저는 일지를 쓰기보다는 주제별로 쓰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이 쓰거나 

 

 

자주 헷갈리는 것들은 이렇게 쓰기도 하고

 

 

지적 받은 사항을 이렇게 모아 놓기도 합니다.

 

 

자주 검토하게 되는 쟁점들과 관련된 기본법리, 판결들을 이렇게 모아두기도 합니다(목차만 살짝 공개).

 

지금도 그렇고 저년차 때 주된 업무 중 하나가 실사(legal due diligence)였는데, 쟁점별로 이렇게 기록해 두기도 합니다. (상세한 내용은 다른 page를 통해 다룰 예정입니다.)

 

 

사실 맞는 방법은 없습니다. 각자가 각자의 방법으로 "자기 자신"이 까먹지 않게 기록해두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기억력이 좋은 분이라면 사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