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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Working Smarter: Tips

법률자문을 처음 받는 고객님께 - 세상 일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서

by 적일행 2020. 2. 16.

법률 자문 서비스를 처음 제공 받는 분들이 제일 이해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변호사가 "단언"을 하는 경우가 잘 없다는 것입니다. 소송을 많이 하시는 분들 중에는 화법이 그래서인지 단언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 자문을 하는 분들 중에는 아주 단언을 하는 사람은 저는 잘 못 봤습니다. 사실 저는 단언하는 분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일을 할 수록 단언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i) 사실관계를 모~~두 늘어놓고 나서야 정확한 검토가 가능한데, 취사된 사실관계 하에서 어떻게 될지는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ii) 실제 선례로만 봤을 때 애매모호해서 법원에 가면 판사님이 뭐라고 생각할지 또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름 열심히 뒤져서 하급심이라도 하나 찾으면 어유 이럴 수 있겠네요라고 말씀은 드리지만, 판사들이 다른 하급법원의 판결에 반드시 구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 판결이 참고는 되지만 반드시 그 판결대로 흘러 가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 고객이 이런 말을 합니다.

 

"저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것이 제일 싫어요. A면 A다, B면 B다 이렇게 답을 주세요."

 

모든 사안에서 객관적으로 A다, B다 답을 줄 수 있으면 참 좋은데,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A일수도 있고 B일수도 있다고 답을 줍니다. 고객은 화를 냅니다. 이번에 소송하면 승소확률이 몇 %나 될 것 같냐, 과태료 맞을 확률이 몇%나 되냐, A일 확률은 몇%고 B일 확률은 몇%냐고 묻습니다. 법률의 세계에서 %로 말씀 드리는 것이 의미 없을 때가 있습니다. 불법 앞에서 평등 주장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규제하지 않고 있어서 남들이 벌금이나 과태료를 받지 않더라도, 정부가 마음을 바꿔서 오늘 부터 규제하기로 하고 당신을 규제한다면 당신은 왜 나만 규제하냐고 따질 수는 없습니다. 걸리는 1과, 걸리지 않는 0이 있습니다. 

 

고객이 화를 낼 것을 아니까 애써서 미약하게나마 A가 유리해보이면 A 가능성이 좀 더 있다는 답을, A도 B도 다 발생할 것 같은데 애매 모호하면 risk-taking을 해서 이렇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답이나 A도 B도 전부 다 회피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실무 경험이 좀 더해질수록(이 바닥에서 구르면서 귀동냥 눈동냥한 것으로) 현실적으로 제재 가능성이 높다/낮다, 이렇게 제재 받은 사례를 보았다 등에 관한 답을 드릴 수는 있지만 그 전제는 (당신이 운이 나쁘지 않다) 입니다. 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한 정보를 원하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싫어하는 고객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변호사는 위법 가능성이 있는 일을 괜찮다고 하기도 어렵고 "대리인"이니 대신 결정해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비싼 돈 써서 변호사 만나러 왔는데 기껏해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답을 듣는 것이 영 답답할 수 있는 고객들의 마음도 잘 이해가 됩니다. 최대한 실천적인 답을 드리려고 노력하지만, 요런 점을 염두에 두고 질의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 궁금한 포인트를 명확히 하세요. 국내에는 법이 정말 많습니다. 변호사도 모든 법을 아는 것은 아니고, 각 산업마다 적용될 수 있는 법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게 정확한 출발점을 줄수록 당신의 변호사가 답을 찾는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특정 분야에 정통한 변호사님들은 출발점이 모호해도 말하지 않은 것도 찾아냅니다만, 제 개인적인 경험상 이런 분들은 아주 많지는 않습니다. 특정 산업에 관한 정보는 산업을 하는 변호사들보다는 현업 분들이 제일 잘 압니다. 저는 인허가 규제 업무가 많은 산업 중에는 관련 법령을 줄줄 외는 분도 봤습니다...RESPECT....)
  • 사실관계를 잘 정리해서, 근거와 함께 주세요.  그렇게 안줘도 정리 합니다만, 그렇게 하면 사실관계 파악이 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변호사가 법률 쟁점을 찾아내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사실관계에 허비하는 속도를 줄일 수 있고 fee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관계를 숨기지 마세요. 상대방이 주장하는 것도 알려주세요. 변호사가 당신의 사업을 같이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좋은 변호사를 잘 고르면 산업도 잘 이해하면서 계속 관심을 갖고 follow up하지만, 변호사가 당신 산업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대략 해상운송엔 이런 것이 있지, 공정은 이런 순서로 이루어지지라고 짐작을 하지만, 실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다 알 수는 없습니다.  
  • 변호사에게 n%정도 될까요-는 다소 부담스러운 질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몇 %라고 못 박는 분들도 보았는데, 통계자료도 없고 n%라는 답은 별로 의미 없습니다.) 그냥 가능성이 높다 낮다 중간 이 정도로 가이드를 얻는 정도로 답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법률검토 결과가 모호해서 어떤 영역들은 경영판단을 내리셔서 나아가야 하는 부분들이 생깁니다. 이럴 때 변호사한테 끝까지 답을 내놓으라고 해봐야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경영판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지, 만약 그렇게 판단한 경우의 리스크는 무엇인지, 그 리스크를 치유할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을 다각적으로 하면 다소나마 실천적인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2년차가 끝날 때 사업하는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속으로 다짐한 바가 있습니다. 친구의 불만은 변호사를 비싼 돈 주고 써봐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말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쓰는 변호사의 처지와 입장도 이해가 되면서, 친구의 입장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법률가들도 전문가들이다보니 자신들만 알아듣는 암호와 같은 화법이 일부 발달해서 비법률가 입장에서는 아니 이럴거면 돈을 왜 쓰나 싶은 순간이 온다는 것(면책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어느 전문가 집단이나 특성이기도 한 듯합니다.). 제가 로스쿨에 가기 전에 참 많이 했던 생각인데 제가 inner circle에 들어가니까 어느 새 그 생각을 잊어버리고 저도 어느새 만연히 변호사스러운 화법을 전문가스러운 것으로 착각하고 정작 비싼 돈 들여 이 답을 받을 고객은 생각 못했던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변호사로서 업무를 수행한 외에 직접 현업에서 뛰어본 경험도 없고 사회생활 경험도 없지만 좀 더 세심하게 듣고 주의를 기울여서 더 나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봐야겠습니다. 이상 젊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