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할 일들이 쌓여 있으나 저녁 8시에 회의가 잡힌 김에 앞으로 30분 + 저녁식사 시간을 좀 길게 누려야지, 그리고 그 이후에 일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일기를 쓰고 있다. 백신 1차 접종을 맞은 이후로 실제로 열이 나는 건 아니지만 조금만 피곤해도 열이 확 뻗치는 느낌이 드는데, 그만큼 무게가 늘어서 그런건지 백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요새는 의욕도 없고, 재미난 일도 없고, 하고픈 일도 없다. 이렇게 노화의 길을 타는 것인가. 듀는 겨우겨우 정말 극한의 순간에 지키고 있는데, 듀를 지켜봤자 상대방은 듀를 안지키고 자기 멋대로 하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맞춰야 하나. 어차피 미리줘도 안보는데 미리줄 필요가 있나. 이런 생각을 자꾸 하는데, 사실은 나는 변하지 않는 고요한 호수처럼 남에게 반응하지 않고 내가 내 할일을 하면 되는 것인데. 잘 안된다.
지난 달부터 나는 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는 살 수가 없다, 이 일이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그런 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이제까지는 이 일이 나쁘다, 이 일이 괴롭다, 이 일이 싫다 류의 생각을 많이 했는데(나와의 관계라기보다는 일 자체를 탓하게 되는 그런 생각), 지금은 그냥 나랑 이 일이 안 맞는다. 이 일이 괴롭다 싫다 나쁘다로 평가할 수 있는게 아니라 나랑 안맞는다. 해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해낼 수 있지만 거기에 따라오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스트레스를 조금만 이겨내면 내가 해낼 수 있기는 한데, 조금만 이겨내야 할까? 남들에게는 맞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그걸 이만큼 오래하고 깨달았으니 사실은 잘 맞는 일인 것일까, 혹은 잘 맞지 않음을 깨닫지도 못한 바보인 것일까.
지난 주 연차를 쓴 파트너에게 전화를 하고 후배가 연차 쓴 줄도 모르고 메일을 막 보내면서, 정말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그냥 이렇게 누구의 휴식도 보장 안되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예전보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나는 원래부터 잘 organized된 것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 일을 처음에 시작할 때 너무 괴로웠다. 실제로 휴식이 가능한 것과 별개로 언제든 전화와서 내 휴식시간을 침범할 수 있는 것이어서) 사실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상황을 혼자 맞닥뜨리게 하필 연차쓰고 사라진 선배가 미우면서도 또 동시에 그도 휴가가려고 계획했던 것일텐데 내가 이렇게 전화걸어서 하나 하나 컨펌받고, 이게 맞는 것일까. 그리고 나에게도 나중에 그런 일이 생기겠지 싶어서. 그냥 그런 미래를 생각하니까 너무 갑갑하고 또 언제든 침범가능하다는 그 느낌이 2년차때처럼 나를 옥죄는 느낌이라 너무 괴로웠다. 한가할 땐 또 한가하지만 어떨 때는 언제든 10분 대기조처럼 있어야 하는 상황이 괴롭다. 앞으로 이렇게 전화를 받다가 하루가 다 가는 날이 더 많겠지. 내 정신이 그대로 잘 유지될 수 있을까?
실사보고서를 취합하고 송부하는데, 돌아온 질의는 전부 내 부분이다. 의견서 질의도 내 부분이다. 내 부분은 내가 써서 다시 리뷰를 안했으니까.. 후배들 껀 내가 리뷰했고.. 당연한 결과이지 싶으면서 너무 또 괴로우면서 또 너무 안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가 또 중요한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성장한다는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이렇게 상처와 흉터가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해서 더 큰 나무가 되고 말거야, 이런 느낌이라기보다는 나는 이미 성장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는데 그걸 넘어서 무엇인가 억지로 더 하려다가 상흔이 남고 피부 위로 지렁이 같은 흔적이 남아서 시시때때로 가려운 기분.
늘 하던 고민 중의 하나는 엣지 있는 커리어를 어떻게 세워서, 좋은 먹거리를 찾을까였는데, 이제는 그러기엔 좀 지친 것 같기도 하고. 엣지 있는 커리어 뒤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지 아니까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다. 지금 내가 행복한 것을 해야 하는데, 미래를 위해서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은 선택들을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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