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하다 하다 지쳐서, 그리고 해소가 절대 안될 눅진한 생각들이 들러붙어서 나의 체력을 너무 앗아가고 있는지라 결국 한달 휴직을 감행했다.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생각할 힘도 없고, 훌륭한 직업인이고 싶었던 이유가 뭔지 동력을 잃었고,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점점 흐려지는 순간이다. 책임은 커지고 의무는 늘어나고 있는데,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한 생각은 없으면서도 남의 방향성에 탑승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남을 설득할 힘도 없는데, 이런 감정들이 눅진하게 달라붙어서 지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쉬기로 결정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걸 결정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지쳤는데, 막상 결정하고 나니 홀가분하다. 우울증 검사 문항 중에 "미래에 대하여 기대가 되는지"에 관한 것이 있다. 휴직 결정 전에는 내가 인생 살며 처음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과 기대가 없었다(나는 원래 시나리오 2만 5천개쯤 짜놓고 사는 사람임). 그런데 휴직 승인을 받고 나니까 기대라는 것이 생겼다.
주변 친구들은 3개월은 쉬지 그랬냐며 그러는데, 나는 3개월 동안 목표 없이 있는 것이 더 견디기 어려워서, 나의 소심병과 걱정병과 뒤쳐짐우려병이 도져서, 한달만 쉬기로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들인데, 쉬고 빠르게 회복해야지.
별 거 아닐 거 같았는데, (사실 지난 금요일부터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지금 며칠 만에 굉장히 기분이 좋아졌다. 한달간 메일을 답장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누군가 알아서 할 거라는 생각, 회사를 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
학점 꽉꽉 채워 들으며 4년 졸업을 못할까 전전긍긍했고, 아파도 학교를 다니고, 휴학 한 번 못했고, 방학 3개월 쉬는 것조차 목적의식적으로 쉬었던 나에게 아무런 목표나 목적없이 쉬는 기간이 처음이다.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되면서, 사실 걱정했던 것은 자취방에 누워서만 보내지 않을까였는데 나름 적당한 시간에 잘 일어나서 동네 한바퀴도 돌아보고, 폰게임이나 인터넷 소설 탐독, 넷플릭스 완주에만 미쳐 있는 것이 아니라(이게 내가 적당히 번아웃이던 시점에 아무 것도 안하고 하던 짓들이다) 청소도 하고 쓰레기도 분리하고, 비타민도 홍삼도 먹고 있다. 며칠 만에 이렇게 행동하는 날 보니까 참, 내가 받은 스트레스들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30대가 되어서인지 인생을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20대의 나는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배우는 데 미쳐 있었고 이걸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그냥 그런 성취가 자연스럽고, 나 다운 것이고, 섬에서 탈출해서 궁금했고,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이라고 은연 중에 믿었기에.
사랑과 지지가 결국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인데, 내가 일을 열심히 하고 싶었던 것도 (나의 불안함이나 성취 욕구도 크지만 약육강식이라기보다는) 그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좋은 기회와 결과를 가져다 주는 사람이고 싶었던 것도 있는 것인데, 정작 그러면서 내가 사랑하고 일상을 꾸려나갈 힘을 잃어버렸다. 한달 동안 쉬면서 일상을 꾸려나가는 힘을 회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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