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가 올라갈수록 외로운 마음이나 순간은 커진다. 물론 외로움이 나에게 주는 영향은 또 많이 줄었다. 어느 정도 친구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가끔 어떤 날은 너무나 마음이 외롭고 누군가에게 이해 받고 싶어진다.
마음이 잘 맞던 친구들 무리도 상당수 회사를 떠났고, 훌륭한 사람들이 난 자리는 너무나 크게 느껴지며, 새로운 관계와 사이들 가운데에 직장을 다니며 편협해지고 시니컬해진 나만 남았다. 회사 친구들하고도 예전처럼 모든 디테일을 다 공유하기도 힘들고(서로 바쁘고 체력 없어서 죽겠으니 예전만큼 잘 안된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도 role과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서 같은 편인지 아닌지 모호할 때도 많다. 어떤 일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에 들어간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고객 안에서도, 상대방 안에서도, 우리 팀 안에서도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얽혀 들어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실타래를 풀어내는 역할이 나에게 주어진 것도 같은데, 워낙 초조병에 걸린 사람이라 쉽지 않다.
"상사"가 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의 별것 없는 발언이 다른 사람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도 뒤늦게 배우고 있다. 내 마음속에 난 아직도 영향력 별로 없는, 그저 그런 변호사 1인데(그리고 오히려 올챙이시절 용기 과다일 때보다 용기가 줄어들어서 눈치를 오지게 보게 됨), 이건 마치 내가 20대보다 크게 나아진 사람이지 않고 철없다고 매번 느끼는 것과 유사하기도 하다. 내 마음 속에 생각하는 나의 영향력보다, 실제 영향력이 더 큰 것 같은 경험을 한다(물론 그렇다고 내 영향이란 것이 그렇게 유의미하게 크다고 볼 것도 아니지만). 주로 긍정적 영향이 아니라 부정적 영향의 파장이 큰 것 같아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아직 수련이 부족해서 잘 안된다. 이러면 꼭 크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때려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편인데, 과연 앞으로 어떨지.
한동안 사람들과 밥을 먹고 다니다가, 또 한동안은 점심 저녁을 다 거르고 일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밖으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모드가 휙휙 바뀌는 데, 정신이 없고 체력만 깎이다 보니까 자칫하면 시니컬해지고 피상적이기가 너무 쉽다. 나에게 매순간 진지하게 대해준 선배들을 되새기며, 나도 매순간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릇이 작아서 잘 안된다.
어제는 아침부터 온 메일 중 하나를 보고 스트레스가 차올랐다. 그래서 이걸 깨보겠다고, 정말 오랜만에 활기찬 활동을 해야지 하면서 공원 산책을 꽤 오랜 시간을 들여서 하고 정말 가볍게 10분을 뛰었다. 오랜만에 걸으니 참 좋았고, 너무 오랫동안 운동을 안해서 10분만 뛰었는데도 헉헉거리는 나에게 실망했다. 공원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뛰는 동안이야 아무 생각이 어려웠지만, 걷는 동안은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20대에 내가 당연하고 쉽게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건강한 나, 가족들과 화목한 나 등등)은 나이 먹을수록 보이지 않는 힘과 노력이 정말 많이 들어가고, 잃어버리면 너무 되찾기가 힘들다. 반대로 20대에 내가 너무 멋있게 생각하고 동경했던 어떤 것들(예를 들어 어떤 스펙이나 커리어)은 그냥 가만히 연차를 먹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도 있고, 잃어버렸다고 세상 종말이 오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의 어려움은 다 다르고, 정말 더 힘든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치만 어제는 그냥 각자가 각자의 외로움과 고통을 견디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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