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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나의 변호사 생활기: jot down74

6년차 단상1 내가 예전에 선망했고, 또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새 나이를 먹어서인지 그냥 지쳐서인지 예전보다 이글이글이 기질이 많이 줄어들어서 한 수 한 수가 버겁고 힘들다. 지금도 소시민이기는 한데, 계속 노력하고 갈고 닦으라는 말을 좀 그만 듣고 싶다고 할까. 일의 흐름을 타거나 흐름 자체를 내 것으로 가져오지 못하고 점점 끌려가고 있었는데 시간 주권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든다. 본투비 사업가보다는 월급쟁이, 1인자보다는 2인자를 선호하는 것 같은데, 동시에 재밌게 일하고 싶고, 이직하거나 크게 drift하려는 노력은 귀찮고, 그렇다고 새로운 걸 열심히 하고 싶은 기분도 잘 안 든다. 일정 수준으로 외국어 스킬을 습득하고 나면 준원어민이 되기 위한 마지막 한 끝의 노력은 잘 하지 않.. 2021. 3. 10.
결국 휴직을 했다 생각을 하다 하다 지쳐서, 그리고 해소가 절대 안될 눅진한 생각들이 들러붙어서 나의 체력을 너무 앗아가고 있는지라 결국 한달 휴직을 감행했다.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 생각할 힘도 없고, 훌륭한 직업인이고 싶었던 이유가 뭔지 동력을 잃었고,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점점 흐려지는 순간이다. 책임은 커지고 의무는 늘어나고 있는데,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한 생각은 없으면서도 남의 방향성에 탑승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남을 설득할 힘도 없는데, 이런 감정들이 눅진하게 달라붙어서 지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쉬기로 결정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걸 결정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지쳤는데, 막상 결정하고 나니 홀가분하다. 우울증 검사 문항 중에 "미래에 대하여 기대가 되는지"에 관한 것이.. 2021. 3. 1.
토스능력과 capacity 모든 법 분야의 숟가락을 얹으려는 것도 자신의 실력을 파악 못한 꼴불견이지만(지금 이 글의 주제는 아님), 어떤 분야는 자신의 업무 분야가 될 수 없다/아니다라면서 지레 겁먹고 다섯 발자국쯤 뒤로 빠지는 태도도 영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여러 법률전문가들과 함께 할 때에는 내가 잘할 영역, 할 수는 있는 영역, 해야 하는 영역을 잘 파악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검토를 넘기는 것도 분명 필요하다. 여러 법률전문가 팀으로 구성된 곳에서 업무를 하면서 이 부분은 남에게 토스해야 한다는 감조차 키우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매우 큰 문제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의 capacity와 자기 동료들의 capacity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 그러나 그렇게 넘기려고 할 때 다시 .. 2020. 4. 3.
이창희, 세법강의, 1장 학교다닐 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세법 수업 들을 걸 그랬다. 그래도 나름 학점 꽉꽉 채워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세법 안들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은 매년 커진다. 아쉬운 대로 이창희 교수님 세법강의를 (작년에 사서 올해야 비로소) 읽으려고 꺼내 들었는데, 1장에 쓴 멘트들이 너무나 내 스타일이어서 아쉬움이 더욱 커짐..1장에서 이미 팬심 생겨남.. - "이번 학기 강의에서 배운 것을 다 잊어버리더라도 세금이 정말 중요하구나, 이것 하나는 기억하라. 살다보면 참말로 덕볼날이 있으리라" (3p) - "사실 민사법이 중요한 까닭은 민사법 지식 자체보다도 민사법을 통한 훈련 때문이다. 민사법은 이미 2천년의 역사를 거쳐 가장 안정적 법률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만큼, 법률가를 훈련하기에 가장 좋은 법이다. 이때.. 2020. 4. 3.
그냥 그저 그런 근황 일하기 싫어 자아는 나의 인스타에만 남겨두려고 했는데, 일이 싫다는 이야기를 또 입버릇처럼 하게 된다. 일과 약간 거리 두기를 하면 일을 해야 재밌게 살지 싶다가도, 일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하기 싫다. 멀리서 보아야 예쁜 것들이 바로 일들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일 덕후일 수도 있겠다 아픈 동안 장류진의 이라는 책을 읽었다. 일에 미친 나같은 인간에게 아주 딱 어울리는 소설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 책의 가치를 너무 떨어 뜨리는 것 같은데, 지금 이 시대를 사는 20-30대 직장인이 느끼는 바를 아주 적절하게 언어화했다는 점에서 시대물로서의 가치가 있고(몇백년 후에 2010년대 ~ 2020년대의 삶을 그리는 현실적인 사료로 쓰일 수 있을 것 같은 디테일함이 있다), 크게 대단한 이념을 추구하는 것은.. 2020. 3. 11.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모른다. 내 연차는 어느덧 5년차. 나이는 서른. 처음 변호사가 되었을 때는 20대 중반이었는데(네, 자랑입니다) 이제 앞자리가 바뀌었다. 게다가 후배들이 밑으로 줄줄이 달려 있다(물론 후배들에게 내가 무슨 insight를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냥 연차가 위일 뿐). 아직 성체 개구리는 못되었는데 올챙이 정도는 탈출한 것 같다. 겨우 올챙이를 탈출한 주제에 개굴개굴 울기도 잘도 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애석하게도 금방 까먹는다. 내가 얼마나 못했었는지, 나는 얼마나 못난이었는지, 그리고 10초 전에 내가 얼마나 똥같은 의견서와 계약서 초안을 선배에게 던졌는지....이 얼마나 편리한 기억력인가. 예전에 선배들을 보면, 선배들이 올챙이 시절 기억을 못하네! 싶었는데 요즘 보니 내가 더 심하다. 바로 내.. 2020. 2. 19.